▲'아픈 손가락'이 된 넷째딸“(정)영주 언니가 그 말을 되게 많이 했어요. ‘아픈 손가락’이라고. 그래서 제가 뻬뻬 사진을 훔쳤을 때 알바들의 표정은, 정말 저를 나무라기 위한 표정은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너무 뻔뻔하게 ‘네’라고 이야기하니까 ‘이것 봐라’하고 때린 거죠. 정말 마음 아파하고,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공연 전에 분장실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대표께서 오더니 ‘어 아픈 손가락 왔다!’ 그러는 거예요. 호세파 하시는 강애심 선배께 ‘제일 눈이 가는, 애정하는 역할이 뭐냐’ 했더니, 마르띠리오가 ‘아픈 손가락’이라고 하셨대요. 호세파와 알바가 생각하는 마르띠리오는 그런 인물인 것 같아요.”
곽우신
두 번째 남편인 안토니오의 죽음 이후,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가부장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억압적 통치가 지배하는 공간이 됐다. 지배자가 베르나르다 알바로 바뀌었을 뿐이다.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출입마저 제한된 딸들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자신을 옥죄는 모든 걸 떨쳐내는 종마들처럼 이 통제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 다만 그것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일어나느냐의 차이일 뿐.
"내 발 너무 크다고 놀려들 대. 매부리코에다 등이 굽었다고. 토 나온다고 저주를 퍼붓지. 내게는 참 익숙한 일, 익숙한 일." -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No.10 마르띠리오(Martirio) 중에서
베르나르다 알바의 넷째 딸 마르띠리오는 콤플렉스와 열등감으로 뭉친 인물이다. "남자들이 다 싫어"한다는 그는 "그래도 사랑 받을 자격 없는 건 아니다"라고 외친다. 그는 억압과 해방 사이의 균열, 그 위에 발 딛고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탈출을 꿈꾸면서도 이를 내색하지 않는다. 그 역시 욕망하는 인간이지만, 엔리케와의 혼인이 무산된 이후 자신에게 그 욕망의 자격이 있는지 되묻기도 한다.
그래서 마르띠리오는 해방을 동경하면서도, 엄격한 규율을 중시한다. 자신이 깰 수 없는 규율을 누군가 깨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남을 질투한다. 특히 그 질투는 어리고 예쁜 막냇동생 아델라에게 집중된다. 모두가 사랑하는 뻬뻬를 독차지한 아델라, 맏이인 앙구스티아스와 결혼이 예정된 뻬뻬를 가로챈 아델라. 마르띠리오의 이중적 욕망과 모순적 언행은 결국 정해진 비극을 가속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돌아왔다. 2018년 초연(관련 기사:
대한민국 뮤지컬의 역사, 이 작품 이후로 바뀔 것이다) 이후 3년 만의 귀환이다. 배우 전성민도 함께였다. 초연 때 마르띠리오로 분해 소화했던 그는, 이번에도 다시 한번 이 '아픈 손가락' 같은 캐릭터를 만나 그를 대변한다.
전성민 말마따나, 그는 "이번에 연극했으니까 다음에는 뮤지컬을 해야지, 이번에는 슬픈 작품을 했으니까 다음에 기쁜 작품을 해야지"하며 무대와 무대를 넘나들었다. 2009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한 이래로, 그가 걸어온 필모그래피 속 인물은 인상파 화가의 색채처럼 강렬하다. <명동로망스>의 전혜린이 그랬듯, 누구보다 '검은색'이 잘 어울리는 배우. <미드나잇> 여자의 뺨에 묻은 붉은 핏자국마냥 선명한 배우. <풍월주> 진성의 흉터처럼, 한 번 뇌리에 각인되면 지워지지 않는 배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자야처럼, 백(白)과 적(赤) 사이에서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을 오가는 배우. 그리고 비록 그를 향한 노래는 아닐지언정, 이 작품 속 가사처럼 "타는 대지의 붉은 해"를 닮은 배우. 그를 최근 정동극장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장애를 걷어내고, 내면에 집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