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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SK 야구단-신세계의 재등장이 남긴 것

[주장] 모기업 의존도 높은 프로야구 산업적 기반 허술해

21.01.26 12:06최종업데이트21.01.2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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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지난 25일 신세계 그룹이 그간 SK텔레콤이 운영해 온 SK 야구단을 인수할 것으로 알려지며 야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26일 보도에 따르면, 이마트는 SK텔레콤이 소유한 SK와이번스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하고 26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두 그룹의 매각 협상이 완료되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최종 승인을 거쳐야 한다. KBO 규약 9조에는 '구단을 양도하고자 하는 회원사는 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총회에서 재적 회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SK는 지난 2000년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인수하여 재창단하며 프로야구계에 뛰어들었다. 후발주자임에도 20년간 4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역대 공동 4위)을 비롯하여 12번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8번의 한국시리즈 진출–6년 연속 한국시리즈행 등 화려한 역사를 기록하며 짧은 기간에 KBO리그의 신흥명문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이른바 '삼청태현(삼미-청보-태평양-현대)'으로 요약되는 인천 프로야구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 모기업과 팀명을 바꾸지 않고 역사를 이어 온 구단이자, 해태-현대-삼성-두산 등으로 이어지는 프로야구의 한 시대를 호령한 역대 '왕조' 계보에도 포함될 정도다.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로 대표되는 팬 친화적인 구단 운영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비록 지난 2020시즌 팀성적(9위)은 좋지 않았지만 종합적인 인기, 성적, 위상, 여기에 모기업의 안정성과 야구단에 대한 애정까지 SK 야구단의 미래를 심각하게 우려할만한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이 전혀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인수-매각 추진에 많은 이들은 당혹감은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신세계그룹의 SK 야구단 인수가 임박할 때 까지도 야구계와 팬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SK 야구단 관계자들은 물론 KBO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는 단순한 비즈니스나 상품을 넘어 문화이자 역사이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마치 기습 작전을 벌이는 것처럼 기업간의 서류 몇장으로 구단의 존폐를 결정하려는 행보에서 그동안 성원을 보내준 야구계-팬들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인수 주체가 또다른 대형 기업인 신세계그룹이라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신세계는 2021년 자산 기준으로 재계서열 9위다. 히어로즈 구단을 비롯해 9-10구단 창단 시에도 여러 차례 야구단 인수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예전부터 야구단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SK가 스포테인먼트를 표방했다면, 이마트로 대표되는 유통기업의 이미지와 스포츠 산업을 어떤 식으로 결합시킬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KBO리그 차원에서는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롯데 자이언츠와는 '유통기업 라이벌전'이라는 경쟁 구도를 마케팅 포인트로 부각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이 다시 스포츠단 운영에 뛰어든 것을 두고 자격논란을 거론하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신세계는 과거 1998년부터 여자프로농구팀 쿨캣을 운영하며 프로스포츠와 인연을 맺었으나 2012년 4월 돌연 15년만에 일방적인 팀 해체를 선언했다.

당시 신세계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와의 논의를 거부하고 팩스 한통으로 해체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스포츠계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물론 프로야구와 여자농구는 산업적 규모와 위상이 전혀 다르기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반성과 문제인식이 없다면 같은 역사가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번 SK 야구단 매각과 신세계그룹의 인수를 둘러싼 논란이 보여준 것은, 결국 모기업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프로야구의 산업적 기반이 여전히 허술하다는 현실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이뤄진 스포츠단의 해체- 인수는 대부분 '모기업 사정 악화'에 따른 것이었다. 역대 인천 연고팀들이 삼미 –청보-태평양-현대로 유독 자주 바뀐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런 경우는 모기업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야구팬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SK가 이번에 신세계에 야구단을 팔아넘기는 것이나, 신세계가 과거 여자농구단 쿨캣을 하루아침에 해체한 것처럼, 꼭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도 온전히 모기업의 '비즈니스적 판단'에 의하여 구단의 운명이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는데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야구계나 팬들은 그저 무기력한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다. SK는 야구단 외에도 농구 등 여러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모기업의 상황이나 입장이 바뀌었을 때 미래의 신세계 야구단이나 또다른 SK 스포츠단이 똑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결국 이는 SK나 프로야구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계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프로야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인기종목들도 현실적으로는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립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하지 못하여 모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더 심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 회장들이 스포츠에 대한 개인적 애정이 컸고, 기업들은 홍보와 내수효과라는 명분으로 스포츠단에 파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달라졌고, 국내 기업들은 비효율적인 투자를 꺼려한다. 한때 국내 스포츠계를 독식하던 삼성가가 스포츠단 운영에 거리를 두면서 명문으로 꼽히던 야구(삼성 라이온즈)나 축구(수원 삼성) -농구(서울 삼성 썬더스)-배구(삼성화재) 등이 급격히 쇠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감성과 명분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가 강화되고 있는 국내 스포츠 산업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어떤 종목-어떤 구단이든 SK 와이번스 야구단과 같은 운명에 놓일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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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 이마트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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