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원은 김원준과는 다른 여린 이미지로 많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다.
양형석
1990년대 초반 가요계를 대표하던 최고의 '꽃미남 가수'는 단연 김원준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휩쓸고 간 1992년, 김원준은 선배의 소개로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해 의류 브랜드 모델을 거쳐 10월 곧바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김원준이 오디션 합격부터 가수 데뷔까지 걸린 시간은 단 45일. 길게는 5년 이상 연습생 생활을 거치는 게 흔해진 현재의 아이돌 시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빠른 데뷔였다.
김원준은 1집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를 시작으로 2집 <언제나>, 드라마 <창공>의 OST였던 <세상은 나에게>, 3집 <너 없는 동안>, <짧은 다짐>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남자 솔로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팬층의 대부분이 10대 여학생에 몰려 있다는 점 때문에 김원준의 음악성이 평가절하될 때가 많지만 사실 김원준은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하던 싱어송라이터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성공사례가 나오면 이를 따라하는 '아류'들이 등장하는 법이다. 김원준이 '꽃미남 가수' 성공의 모범사례가 되자 김원준의 소속사에서는 1995년 비슷한 느낌을 가진 또 한 명의 꽃미남 가수 박지원을 데뷔시켰다. 박지원은 <느낌 만으로>라는 데뷔곡으로 비교적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지나치게 김원준의 길을 벤치마킹한 탓에 '리틀 김원준'의 이미지를 벗을 만한 자신만의 개성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1994년 10월 또 한 명의 잘 생긴 솔로 가수가 데뷔했다. 사람들은 또 다른 '김원준 아류'가 등장했다며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김원준과는 다른 개성이 있었다. 재미교포 출신으로 UC 버클리 심리학과 특례 입학까지 미루고 가수가 되기 위해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서지원이었다. 서지원은 4개 월의 연습 기간과 3개월의 녹음을 마친 후 초스피드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짙은 쌍커풀에 남성적인 미남형인 김원준이 무엇이든 잘 챙겨 줄 거 같은 잘생긴 동아리 선배 이미지였다면 183cm의 훤칠한 키와 달리 여리여리하고 곱상한 외모의 서지원은 보호해 줘야 할 거 같은 연하남 이미지였다. 데뷔곡 <또 다른 시작> 역시 발라드곡 임에도 안무가 들어 있는 것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물론 서지원 전에 유영진이 <그대의 향기>라는 R&B곡을 부르며 격렬한 춤을 춘 적도 있었다).
서지원은 오태호가 작사, 작곡한 데뷔곡 <또 다른 시작>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후 댄스곡 <사랑, 그리고 무관심>으로 활동하며 성공적으로 1집 활동을 마쳤다. 서지원은 예능 활동을 병행하면서 2집 앨범을 준비했는데 서지원 2집에는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대거 앨범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팬들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1996년 새해 첫 날 대중들이 접한 소식은 서지원의 2집 앨범 발매가 아닌 그의 충격적인 죽음이었다.
한층 성장한 보컬이 빛나는 서지원의 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