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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없는 콘텐츠 속에서 빛난 김대희의 만랩 '꼰대력'

[리뷰] 유튜브 채널 <꼰대희>의 인기 급상승, 그 이후를 주목하며

20.12.31 11:07최종업데이트20.12.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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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대희 유튜브 채널 <꼰대희> 캡쳐 화면. ⓒ JDB엔터테인먼트

 
지상파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이 없다시피 한 요즘 그야말로 각자도생 시대다. 일부 지상파 공채 출신 인원들이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 그리고 지상파 3사 예능 프로에 얼굴을 내보이고 있지만 개그 프로를 통해 공개홀 및 TV 브라운관에서 시청자들과 만나던 다수의 개그맨들은 저마다 개인 유튜브 채널 등을 만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KBS 공채 14기이자 1999년 <개그콘서트> 개국 공신 중 한 사람인 김대희 또한 지난 8월부터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꾸준히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개그맨 경력을 보면 중견을 넘어 고참 선배급이지만 유튜브로 치면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라 신인과도 같다. 최초 개설 후 수백 명 가까이 구독자를 모은 후 정체됐던 그의 채널은 최근 3주 사이에 급성장, 말 그대로 '떡상'(급상승을 뜻하는 은어)해, 이젠 30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하게 됐다.

채널명은 '꼰대희'다. 권위적인 사고방식의 어른을 비하하는 꼰대라는 단어에 자신의 이름을 합친 결과물이다. <개그콘서트> 속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권위적인 가장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던 그였기에 꽤나 적절한 네이밍이라 할 수 있다. 

'족보' 없는 콘텐츠들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김대희는 재기발랄한 후배 개그맨이나 슬랩스틱 등으로 몸을 사리지 않던 동료 개그맨에 비해 크게 주목받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돈 벌면 뭐하겠노 소고기나 사묵겠지", "밥묵자" 등의 유행어들이 있으나 경력에 비할 때 화려한 인기를 구가하진 않았다. 잘생긴 개그맨의 원조 격으로 일종의 라인을 구축한 면이 있고, 프로그램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동료 개그맨들이 궂은일이 있을 때 그 자릴 채우고 빛내 준 조력자가 되어 온 면이 있다.

그랬던 그가 자신에게 투영된 꼰대 이미지를 정면으로 들고나온 건 일종의 도전이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단어지만 거기에 코미디 요소를 덧씌우며 나름 풍자적 캐릭터를 구축해왔던 그다. <꼰대희>는 일상을 사는 꼰대 아저씨가 겪는 문화 충격 내지는 신문물 부적응 모습을 더하며 구독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꼰대희>의 급성장은 우정 테스트 콘텐츠가 계기였던 걸로 보인다. 지난 11월 20일 업로드 된 이 영상은 지인들에게 다짜고짜 백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 빌리려 하는 꼰대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몰카와 우정 테스트라는 고전적 개그요소가 담긴 간단한 구성인데 절친한 김준호가 흔쾌히 "더 빌려줘? 다른 사람에게 빌릴 바에야 내게 빌리는 게 낫지"라는 진솔한 모습을 보인 것, "노름하냐?"라면서도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 배우 정준호, "(돈 빌리고 싶어?) 그럼 짖어봐!"라고 응수한 후배 개그맨 장동민 등의 모습이 큰 웃음을 줬다.

자세히 뜯어 보면 <꼰대희>에는 특정 콘셉트가 없다. '대화가 필요해' 속 아버지 캐릭터로 빙의하고 아들 역할을 하며 온갖 도전을 시켜보는 제작진 등 2인 구도만 존재할 뿐이다. 2020년 8월 19일 올라온 첫 번째 영상은 소위 유명 유튜버들은 한 번씩 했던 '원칩 챌린지'였다. 한 입 먹는 순간 지옥같은 매움을 경험하게 하는 이 과자 하나를 먹고 리액션을 보이는 건데 김대희는 외마디의 욕을 하고, 침을 질질 흘렸다. 말 그대로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그 뒤로 매운 치킨 먹기, 걸그룹 마마무 노래 리액션 하기 등부터 게임 콘텐츠와 한글 타자 키보드 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특정한 사물이나 신체 부위를 통해 작고 균일한 소리를 내는 콘텐츠) 등 소위 인기 장르는 모조리 섭렵하려는 의욕을 보였다. 먹방이면 먹방, ASMR이면 ASMR로 명확하게 콘셉트를 잡고 가는 다른 유명 유튜버와는 다른 길이다. 말 그대로 '족보 없는', 일단 잡히는 대로 해보자는 제작진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개그맨 김대희 유튜브 채널 <꼰대희> 캡쳐 화면. ⓒ JDB엔터테인먼트

 
노잼 아재에서 유잼 꼰대로

<꼰대희>의 매력은 그런 콘텐츠 구성이나 기획에 있기 보단 툭툭 튀어나오는 김대희의 아재스러운 면모와 꼰대의 면모에 있어 보인다. 실시간 게임 콘텐츠를 하다 채팅창에서 다른 참가자들에게 온갖 무시를 당하면서도 키보드가 느려 제대로 응수하지 못하는 모습, 키보드 ASMR을 한답시고 한컴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켠 뒤 스페이스 바를 누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띄고!"를 외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중년 아재'다.

또한 애주가로 알려진 그가 야심 차게 소주를 감별해보겠다며 준비한 콘텐츠에선 눈을 가리고 다섯 종류의 소주를 마시지만 단 한 차례도 맞추지 못하고 결국 취해 잠들고 마는 모습이 등장한다. 게임 콘텐츠 방송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사실은 (게임보단) 바둑을 잘한다며 프로기사를 섭외하지만 실상 전혀 바둑을 못 두는 본모습이 들통 난 그가 택한 건 오목이었다. 소주 감별을 공언한 모습과 프로바둑기사를 오목으로 이겨 놓고 좋아하는 모습에선 꼰대의 기운이 스물스물 느껴진다. 

이뿐일까. 간장 계란밥을 먹으며 울음 참기 챌린지를 하는 콘텐츠에선 눈물과 웃음이 공존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영상은 구독자들도 눈물 흘릴 만한 슬픈 영상인데 밥을 꾸역꾸역 비벼놓고 삼키는 꼰대희의 모습에선 웃음이 난다. 누리꾼들은 '울면서 웃고 있는 지금 난 순식간에 사이코패스가 된 것 같다', '눈에선 눈물이 나는데 입은 계속 크헣헣 웃고 있다', '아니 대체 왜 마지막에 간장 계란밥 레시피를 올려놓는 건데. 빵 터졌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격하게 호응하는 모습이다. 이런 콘텐츠에선 뼛속까지 개그맨, 즉 김대희의 '뼈그맨' 성격이 엿보인다. 해당 영상 설명에 김대희는 직접 "구독과 좋아요는 꼰대희의 여성호르몬 촉진에 도움이 된다"는 깨알 홍보 문구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구독자의 요구에도 발 빠르게 응하는 꼰대희다. 아이돌 그룹 마마무의 영상 리액션 콘텐츠에 몇몇 누리꾼들이 소속사인 알비더블유(RBW) 대표를 찾아가 꿀밤을 때려달라(회사가 해당 아티스트를 혹사시킨다는 논란이 있었음-기자 말)는 요청에 정말로 사무실을 찾아가 기어코 (꿀밤을 맞는 대신 소고기를 사겠다는 RBW 대표 제안에) 소고기를 얻어먹고 온다. 혼자만 먹고 온 게 아니라 직원들까지 얻어먹게 해서 대표로 하여금 152만 7천 원을 지출하게 한 건 덤이다.

아직 일관된 오프닝 영상이 없고, 편집이나 자막도 균질하지 못한데 오히려 이런 투박함이 <꼰대희>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최근엔 (다른 유튜버들처럼 협찬이 들어오는) '유료광고포함' 자막을 달고 싶은 <꼰대희>의 희망이 이뤄졌다. 초기 콘텐츠에서 '유료광고희망', '유료광고구걸' 등의 자막을 달았는데 최근 대전광역시 협찬으로 시 홍보 콘텐츠를 업로드했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에서 꼰대희는 마스크를 쓴 채로 대전 시민들을 만나 여러 요구사항을 듣고 시 홍보담당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패기를 보였다. 17세 학생들과는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와플까지 사주는 마음 넓은 꼰대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주목도가 올라가면서 <꼰대희>를 응원하는 반응이 주로 올라오고 있다. 대전시 홍보 콘텐츠엔 '경상도 사투리 쓰는 서울 사람이 대전 시청에 건의하는 영상ㅋㅋㅋㅋ'이라는 반응들이 달리기도 했다. 특히 여러 영상에서 그를 할리우드 유명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비교하는 댓글이 꽤 많다는 게 흥미롭다. '사업 망한 토니 스타크(영화 <아이언맨> 속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배역 이름) 느낌이 난다', '뭔가 살짝 잘못된 토니 스타크 같다'는 등이다.

김대희 또한 몇몇 댓글에 직접 답글을 달며 소통하고 있다. 느린 타자 속도로 간략하게 "고맙데이~"라며 답하는 그의 모습에 자못 미소가 지어진다. 최근엔 후배 개그맨들을 직접 초대해 '대화가 필요해' 자체를 패러디 하는 콘텐츠를 연이어 내보이고 있는데, 소소하게 뒤늦은 유튜버로 암약하던 그가 나름의 잠재력을 더욱 펼치길 기대해 본다.
꼰대희 김대희 유튜브 김준호 장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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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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