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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군을 반겼을 정도...' 90년 전 이 나라의 끔찍했던 진실

[리뷰] 영화 <미스터 존스> 조지 오웰 '동물농장'과 다름 없었던 우크라이나

20.12.30 10:53최종업데이트20.12.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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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존스> 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작가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우화의 형식으로 쓴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인간을 몰아내고 농장을 차지한 동물들이 새로운 지도자인 돼지 나폴레옹에 의해 억압과 폭력을 당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독재의 추악함을 말한다. 이를 통해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를 내세웠던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기도 하다.
 
오는 1월 7일 개봉 예정된 영화 <미스터 존스>는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에 일으킨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를 최초로 폭로한 기자인 가레스 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시인 랭보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토탈 이클립스>로 유명한 폴란드의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로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만큼 건조한 화면에 뜨거운 감정을 담은 연출을 선보인다. 극 중에서 <동물농장>을 인용하면서 주제의식에 대한 집중력을 높인다.
 
영화는 193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이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이전이며,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공산주의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이 1945년 <동물농장>을 출간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도 당시 영국 상류층이 스탈린에게 우호적이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작품 속 가레스 존스가 스탈린을 취재하러 한 게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미스터 존스>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웨일스 출신의 존스는 로이드 조지 영국 수상의 외무고문으로 일한 경력과 아돌프 히틀러를 인터뷰하며 화제를 모은 적도 있지만, 그의 기행을 감당하지 못한 언론사의 사정으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스탈린이 선전하는 유토피아에 의문을 갖는다. 레닌에 의해 이뤄진 공산주의 혁명은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렸다. 1922년 탄생한 소비에트 연방은 농업이 중심임에도 빠르게 산업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자부하며 공산주의 낙원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이런 빠른 산업화를 위한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에 의문을 품은 존스는 스탈린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향한다. 그의 예상대로 인터뷰는 쉽지 않다. 일주일을 잡은 일정은 2일로 축소되어 있고, 비밀경찰이 도청을 통해 기자들을 감시한다. 여기에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인 월터 듀란티는 존스의 협조 요청을 무시하고 현실과 타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존스의 모습에 베를린에서 온 기자 에이다 브룩스는 마음을 연다. 에이다는 존스에게 스탈린의 아킬레스건을 볼 수 있는 힌트를 던져준다. 다만, 그 계획이 성공할지 알 수 없고,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진실이 세상을 움직일지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다. 존스는 소련 측 인사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향하던 기차에서 뛰어내린다. 소련 정부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 밖의 것을 보기 위해서다.
  

<미스터 존스>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그가 본 건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설원에 쌓인 시체다.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를 통한 대량살인이란 뜻을 지닌다. 스탈린의 경제개발계획의 핵심 중 하나는 집단농장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자영농이 발전해 있었고, 당연히 지주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이에 스탈린은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그 책임을 모두 지주들에게 돌렸고, 이들의 창고에서 곡식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
 
화가 난 농민들은 집단농장을 개척하기 위해 자신들의 소가 끌려갈 바에야 도살을 택했고, 비옥한 우크라이나의 영토는 망가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련은 계획을 멈추지 않았고 곡물을 수탈했다. 그들의 계획은 이 곡물을 팔아 그 돈으로 산업화를 진행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굶주린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길가에서 아사하는 일도 다반수다. 먹을 것이라고는 나뭇가지 밖에 없는 현실에 존스는 경악한다.
 
<동물농장> 속 동물들은 인간인 농장주를 몰아내고 희망에 빠진다. 그들과 같은 동물이 집권을 하면 동물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허나 나폴레옹은 치열한 권력다툼 후 자신의 반대편에 선 동물들을 숙청하고, 프로파간다를 통해 세력을 넓히는 데에만 치중한다. 그가 동물들을 공격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는 개는 당시 소련의 비밀경찰을 의미한다. 스탈린은 인민평등의 공산주의를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왕정과 다름없는 독재를 진행했다.
  

<미스터 존스>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쓴 이유는 스페인 전쟁의 참전 기억 때문이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군은 프랑코 왕정 독재에 대항해 싸웠다. 허나 인민해방을 주장한 소련은 자신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민군을 학살했다. 작품은 우크라이나의 잔혹한 현실을 인간과 돼지가 구별되지 않는 <동물농장>에 비유한다. 듀란티와 같은 현실에 타협하고 프로파간다에 앞장서는 이들은 돼지, 그 아래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이들은 양에 비유된다. 현재까지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는 소설이 된 <동물농장>처럼 홀로도모르를 폭로한 존스의 기사 역시 이러한 힘을 지닌다.
 
작품은 존스와 듀란티의 대립과 진실을 찾기 위한 열정을 건조한 연출로 보여준다. 1930년대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당시 유럽 지식인들의 긍정적인 인식과 <동물농장>에 대해 안다면 더 깊이 있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당시 250~3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도모르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독일 나치를 오히려 해방군으로 여겼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미스터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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