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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키재기'된 프로농구, 강팀도 약팀도 없어진 이유

[주장] 상하위팀 격차 무의미한 남자 프로농구, 팀 전력도 불안정

20.12.15 09:13최종업데이트20.12.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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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1시즌 남자 프로농구(KBL) 순위표는 여러모로 참 낯설게 느껴진다. 바로 지난 시즌에 비하면 서열이 확 바뀌었다. 지난 시즌 공동 1위를 차지했던 서울 SK가 6위, 원주 DB는 아예 꼴찌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 시즌 꼴찌였던 고양 오리온은 2위로 치고 올라있다. 올시즌 '3강'으로 예상되었던 팀중 선두 안양 KGC만 이름값을 하고 있을뿐, 나머지는 모두 예상이 빗나가며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상하위팀의 격차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것도 올시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1위 KGC부터 9위 창원 LG까지의 승차는 고작 3.5게임에 불과하다. 상위 6팀이 모두 5할승률을 넘겼고, 7-9위인 모비스, 삼성, LG도 1~2경기만 이기면 금방 5할승률에 진입할수 있는 위치다. 최하위 DB만 5승 15패로 경쟁에서 한발 뒤처졌을 뿐이다. 사실상 절대강자없는 '9중 1약'의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올시즌 각 팀의 전력은 매우 불안정하다. 강팀으로 예상되었던 팀들도 연패와 연승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이 빈번하다. 지난 시즌 1위 DB는 개막 3연승으로 순조롭게 출발했으나 이후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이 터지며 무려 11연패를 당하는 대참사를 겪었다. 1라운드를 7승 2패, 단독 선두로 마치며 돌풍을 일으켰던 인천 전자랜드 역시 최근 6연패로 극심한 아홉수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탈출하여 10승 고지에 올라섰다. 3라운드에서는 SK가 4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중위권으로 내려앉은 상태다.

반면 초반 저조한 모습을 보이던 KGC는 5연승,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KT는 브랜든 브라운이 가세하자 7연승 행진을 내달리며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고올라왔다. 오리온도 11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한 이후로 6승 1패를 기록하며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물론 지금의 판도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우세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경기를 맥없이 지는 팀이 있는가 하면, 불리할 것이라 예상된 경기를 대승하는 팀들도 나온다. 그때그때 어느 팀이 흐름을 타느냐에 따라 매경기 결과와 순위표가 어떻게 요동칠 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단 올시즌 10개구단의 전력이 예년보다 평준화됐다. SK와 KGC가 선수층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아직까지는 다른 팀과 그 격차가 크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현재 최하위에 처져있는 DB도 주전급 선수들이 한꺼번에 줄부상당하는 악재가 아니었다면 장기 연패에 빠질 전력이 아니었다. SK도 최근 SNS 논란을 일으키며 5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 최준용의 공백에 안영준의 부상, 자밀 워니의 퇴장까지 악재가 겹치며 순식간에 연패에 빠졌다.

강력한 외국인 선수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다. 상위권에 올라 있는 KGC-오리온-KCC 등을 보면 국내 선수들의 활약상이 돋보이고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비교적 낮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올시즌 프로농구에서 평균 20점대 이상의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자밀 워니(SK) 한 명 뿐이다. 외국인 선수가 2인에서 1인 출전제가 되면서 한 선수가 공수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하는 '몰빵 농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올시즌 화려한 NBA 출신 경력자들이 KBL로 진출하면서 외인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뚜껑을 열자 워니나 캐디 라렌(LG), 브랜든 브라운(KT) 라건아(KCC)같은 기존 KBL 경력자들의 활약이 크게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KBL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한 새 얼굴들이 의외로 고전하면서 잇달아 교체 후보로 거론될 정도다. 혼자 플레이하는 외국인 선수보다는 국내 선수들의 플레이와 조화를 이루고 궂은 일에도 적극적인 타일러 데이비스(KCC), 에릭 탐슨(전자랜드), 아이제아 힉스(삼성)같은 '이타적인 선수들'의 가치가 새삼 재조명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외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와 무관중 경기 등으로 선수들이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도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팬들의 함성과 응원을 느끼며 경기를 치르는 것과, 무관중 경기에서 선수들의 집중력은 확실히 달라진다. 선수들은 코로나 사태로 조기종료된 지난 2019-20시즌에도 무관중 경기가 시행된 이후 득점력 하락과 턴오버 증가 등으로 경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외국인 선수들은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으로 국내 구단과 계약을 해지하려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국내의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악화되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향되었고 프로농구도 무관중경기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만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까지 상향될 경우, 프로농구를 비롯한 스포츠가 다시 올스톱된다. 선수들도 내색은 안하더라도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경기력과 동기부여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리그가 중단될 경우 선수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비시즌간 준비해 온 경기감각과 체력이 공백기로 인하여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시즌이 재개되더라도 경기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코로나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남은 일정을 무관중 경기 혹은 NBA 버블같은 중립 경기로 치리는 대안도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프로농구는 불확실성이 너무나 많은 상황에 놓여있다. 이럴 때일수록 프로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매경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집중력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농구가 아직까지 정상적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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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순위 코로나19 무관중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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