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증표, 오리“제가 하면서도 너무 싫어요! 너무 빼고 싶어요. (웃음) 그 상황에 백석이 실제로 오리를 주지는 않았겠죠? 않았을 거예요, 아마. 예전에는 그 신에서 야유가 나온 적도 있어요. 물론 재미있게 쓰인 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의 증표를 자야에게 주는 거니까. 연출께서도 백석이 마치 임기응변에 능하고, 갈대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고, 너무 많은 의미를 주지 않고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여기기로 했어요. 최대한 덜 드러나도록이요. 오리를 부각할수록 자칫 드라마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백석의 나타샤는 누구였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문제였다면 나타샤에 밑줄을 그어놓고, '다음 중 나타샤가 가리키는 것으로 옳은 것은?'과 같은 질문에 객관식으로 답을 해야 했을 테다. 하지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시인이 더러운 세상을 버리고 함께 떠난 나타샤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명료한 정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최소한 자야 김영한에게는, 나타샤는 본인이었다. 백석이 자신을 위해 지어준 시였다. 비록 자야 여사의 일방적인 주장이지만, 증명할 수 있는 증거도 마땅치 않지만, 별다른 무게감 없이 흩어지는 그렇고 그런 말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야 여사가 자신의 평생을 바친 것이나 다름없는 대원각을 부처님께 시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석을 기리고 그의 시를 애달파한 그의 삶 자체이다.
자야 김영한의 입장에서 쓰이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실체적 진실과의 교집합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를 향해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라고 했던 백석은 분단의 아픔 속에 가족들이 있는 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며 여생을 보냈다. 그에 관한 기록은 남은 게 별로 없고, 한반도 남쪽에서 그의 이름은 '월북 시인'이라는 이유로 오래도록 지워져 있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믿어보기로 한다. 백석의 시가 이 이야기들을 엮어내고, 작가의 상상력이 덧대어진다. 홀로 남아 세월을 견디고 있던 자야는 상상 속에서 매번 자신을 찾아오는 백석과 추억을 곱씹는다. 매일 오는 그가 반갑다가도, 눈을 뜨면 사라지는 그가 원망스럽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이제 더는 찾아오지 말라고 내뱉어 보지만, 백석이 내미는 손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자야에게 손을 내미는 백석, 그에게 여전히 아름다우니 아무것도 찍어 바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백석, 그와 함께 바다에 가자고 제안하는 백석. 멀끔한 양복을 갖춰 입은, 시대를 앞서가던 시인은 정말 어떤 존재였을까. 최소한 자야 김영한에게는 어떤 의미의 사람이었을까. 초연과 재연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시즌까지 백석을 연기해온 배우 강필석에게 물어보았다. 지난 11월 19일 서울 흥인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담백하게, 시처럼 연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