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웰컴 투 X-월드> 스틸컷
(주)시네마달
할아버지가 분가를 제안한 후 집안 분위기는 냉전 그 자체였다. 드디어 시월드에서 공식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엄마는 나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집은 마구 지어대는데 전세금 1억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이 없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반복했다. 급기야 결혼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인생 자체를 후회하는 엄마를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그 꿈이 무너졌다. 아빠의 사업 실패와 갑작스러운 죽음은 두 남매와 시부모까지 모셔야 하는 극한의 삶으로 내몰았고 엄마를 짓눌렀다.
그렇게 엄마는 할아버지 집에서 나와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최악의 전세난에도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만나 손수 고치고 다듬어 완성한 아늑한 집이다. 과연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었다면 독립할 수 있었을까.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쉽게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는 내가 알지 못하는 관계의 사슬이 쌓여 있는 듯했다.
결혼하고 남편이 죽었지만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는 남편의 먼 친척의 지방 결혼식에 다녀오는 엄마를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식장에서 외톨이가 될 거란 예상과 달리 친척들은 적극적인 반가움의 표시했다. 그럼 모습을 보며 엄마가 결혼으로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기도 했다. 엄마 곁에는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가 시월드에서 탈출하지 않는 기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대소사 중 하나인 '결혼'에 대한 세대 간 시각을 솔직히 담아낸다. 내내 가장 큰 조력자이자 친구인 엄마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사랑스럽게 담겨 있어 무겁게 흘러가지 않는다. 가족이란 꼭 혈연관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엄마와 할아버지는 서로 맞지 않아 삐걱거림을 애써 모른 척하고 서로 상처 주며 지난 20년을 고생했다. 그만하면 되었다. 모두가 잘 해냈고 이제 각자의 새로운 출발만 남았다. 일생일대의 최대의 위기를 넘겼지만 위기는 언제든 또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여전히 많다. 이제 막 미지수의 세계, X 월드로 들어선 엄마를 언제나 응원한다. X 값에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모습도 궁금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임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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