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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범은 조카인데... '옆 얼굴'에 열광하는 언론의 끔찍한 짓

[리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옆 얼굴> 행복을 원하지만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

20.07.15 10:24최종업데이트20.07.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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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얼굴> 포스터 ⓒ 제24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번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코로나 19'로 인해 해외 게스트가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 영화 상영 전 감독이 영상을 통해 인사를 건넨다. <하모니움>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후카다 코지 감독은 영상을 통해 자신의 신작을 소개하며 "한국과 일본에서 기자의 이미지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관객 분들도 작품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옆얼굴>은 타인의 옆얼굴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작품의 주인공 이치코는 가정간호사다. 그는 오이시 가족의 할머니를 극진히 돌보면서 그 집에 드나든다. 그는 카즈미치라는 이발사를 좋아한다. 사별한 남편과 이름이 똑같은 그 남자는 호감으로 다가온다. 이치코는 카즈미치의 집 맞은 편 자신의 집에서 창문으로 밤마다 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카즈미치의 애인이 모토코라는 걸 알고, 이치코는 그 마음을 접는다. 모토코는 오이시 가족의 첫째 딸이다. 모토코는 이치코처럼 가정간호사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으며, 마치 친동생처럼 이치코를 따른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무너진 건 모토코의 동생, 사키가 실종되면서다. 그 범인이 자신의 조카인 타츠오라는 걸 알게 된 이치코는 당황한다. 그는 그 사실을 오이시 부인에게 솔직하게 말하고자 한다.
 

<옆얼굴> 스틸컷 ⓒ 제24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런 이치코를 막는 건 모토코다. 모토코는 이치코가 사실을 말하면, 다시는 이치코를 볼 수 없단 걸 알기에 이 사실을 숨기자고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모토코 뿐이다. 모토코가 입을 다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치코는 재혼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 사실을 숨기는 데 동참한다. 하지만 모토코가 이치코의 재혼 소식을 안 순간, 그는 분노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치코의 행복을 그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토코의 심리는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양>에서의 심리와 유사하다. 이 작품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신애는 도섭이란 남자한테 아이를 유괴당하고, 아이는 죽고 만다. 고통 받던 신애는 교회에 나가 구원을 얻었다 생각하고 도섭을 용서하고자 한다. 하지만 면회에서 만난 도섭이 자신은 하나님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하자 신애는 분노한다. 자신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신께 용서받았다는 도섭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애는 자신이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데, 도섭은 마음에 평안을 찾았단 사실이 원망스럽다. 모토코 역시 마찬가지다. 사키는 납치에서 구출된 뒤 흉흉한 소문에 휩싸인다. 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모토코는 이치코가 사키의 일로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갔으면 한다. 그러니까 이치코를 용서하고 행복하게 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치코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통해 행복을 얻고자 하자 울분을 느낀다.
 

<옆얼굴> 스틸컷 ⓒ 제24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일본어 옆얼굴(よこがお)에는 '사람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일면'이란 비유적인 뜻이 있다. 우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 온전히 얼굴 전체를 보지 않는다. 명(明)과 암(暗) 중에 어느 한쪽 측면만 바라본다. 그 이유는 그 한쪽에서 욕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서 행복을 느끼고 싶으면 밝은 부분을 바라보지만,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면 어두운 부분을 바라본다. 모토코는 이치코의 어두운 옆얼굴을 보기 위해 특정한 집단을 이용한다. 바로 기자다.

이 작품에서 기자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만을 바라보고 조명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사키를 납치한 범인이 타츠오로 밝혀진 날, 기자들은 그의 어머니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 일본은 가족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그래서 기자들은 가족을 향하고 그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댄다. 타츠오는 이치코의 심부름으로 카페에 온 날 사키를 보았다. 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이치코에게 심부름을 시켰다는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언론은 자극적으로 이치코를 묘사한다. '납치 대상을 물색한 간호사'라고 말이다. 기자들은 이치코와 오이시 가족 사이의 유대관계와 헌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극적으로 이치코의 어두운 옆얼굴만 바라볼 뿐이다.
 

<옆얼굴> 스틸컷 ⓒ 제24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들은 불행에 반응하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한다. 대중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 동정과 온정을 표하기보다는 범인을 찾는 데 열을 올린다. 범인이 잡혀도 그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 가족이나 주변인을 뒤져 잘못을 묻는다. 자신이 느끼는 불행과 고통을 타인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행복하지 못하게, 자신처럼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심리는 어두운 옆얼굴만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불행이란 옆얼굴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런 욕망을 지닌 옆얼굴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이치코가 카즈미치에게 사랑이란 욕망을 품고, 모토코가 이치코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욕망을 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걸 바라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한테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품기 때문이다. 이 감춰진 욕망은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려내며 흥미를 자아낸다.

<옆얼굴>은 우리가 타인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타인에게 어떤 얼굴을 보여주는지 물어보는 영화다. 혹 그 사람의 어두운 면만 바라보려고 하지는 않는지, 자신의 욕망은 숨긴 채 남에게 엄격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진 않는지 질문을 던진다. 서로의 옆얼굴만을 바라봤기에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행복을 원하지만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옆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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