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스틸 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길을 잃는 것은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다크 나이트>가 만든 하비 덴트의 거짓과 진실이 촉발한 갈등에서 비롯된다. 하비 덴트 덕분에 범죄가 사라진 고담에서 경찰청장 짐 고든 만은 아직 악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고, 하수구에서 베인을 만난 뒤 그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다.
하지만 고든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경찰들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린다. 배트맨의 정체를 믿고 있기에 하비 덴트를 의심하던 블레이크는 고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다. 반면에 하비 덴트의 업적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폴리는 마지막 전투 전까지 거듭 고든과 충돌한다. 정의를 위해 함께 싸우는 경찰이지만 서로가 알고 있는 진실이 엇갈리는 것이다.
이처럼 진실과 거짓의 프레임 안에서 전개되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이 시리즈가 하나의 신화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신화는 거짓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진실된 이야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영화의 테마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신화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 단어 Mythos의 어원은 '진실을 이야기하다'라는 의미의 Mythesasthai로, 이후 이성적 사고와 철학이 발달하면서 Mythos는 신화, 곧 거짓된 이야기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는 신화의 내용이 설사 거짓일지 몰라도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서는 진실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예수는 진정한 신이지만 아닌 사람에게는 그저 역사적 인물 중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하나의 신화는 거짓과 진실을 함께 지니고 있으므로, 둘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화 자체를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 신화는 실재로서 힘을 갖는다.
이러한 신화의 속성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주요한 두 축인 베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하비 덴트와 배트맨에 대한 이야기에도 깃들어 있다. 작중 인물들은 이 두 이야기를 전설 혹은 신화로 치부하는데, 그들은 이야기 속 진실을 찾지 못하더라도 이야기 자체를 진실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혼란을 딛고 악에 맞서는 힘을 갖는다. 감옥에 갇힌 배트맨은 환상 속에서 라스 알 굴을 만난다. 이 만남을 통해 그는 베인이 라스 알 굴의 아들이자 후계자이며 감옥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어린아이 역시 베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베인이 고담을 무너뜨리는 것을 <배트맨 비긴즈>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막아야 한다며 전의를 불태우며, 신화 속 베인이 그러했듯 줄을 묶지 않은 채 감옥을 올라 탈출한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 달리 베인은 이야기 속 아이가 아니었고, 라스 알 굴의 후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진실과 관계없이, 베인에 대한 여러 이갸기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배트맨의 태도가 그에게는 시련을 이겨내고 고담을 구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부청장 폴리도 마찬가지다. 하비 덴트는 정의로운 인물이고 배트맨은 악한이라고 믿던 그는 배트맨과 함께 베인과의 마지막 전투에 목숨을 걸고 나선다. 배트맨을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배트맨으로부터 이렇다 할 도움을 받은 적도 없던 그가 불타는 배트맨 사인을 본 뒤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는 배트맨의 선의를 믿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도 마침내 믿기로 결정했기에 가능한 변화다.
작중 내내 자신과 충돌하며 배트맨이 무고하다고 말하던 블레이크, 범죄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베인은 신뢰할 수 없다던 고든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그의 입장에서는 아직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두운 밤을 환히 밝히는 배트맨 사인을 보면서 진실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진짜라고 믿을 때 비로소 실재하는 신화의 특성을 활용해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의 스토리를 한데 모아 정리한 영화다. 따라서 이 작품은 트릴로지를 하나의 신화로 거듭나게 하는 마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