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맬컴 X를 죽였나?>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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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는 노예 제도 폐지 이후에도 흑인들의 실질적인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지역이 많았습니다. 흑인에 대한 폭력, 방화, 살인은 비일비재했으며, 일상에서도 흑백 분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죠. 50, 60년대에 일어난 흑인 민권 운동은 이런 불합리에 반대하고 법적, 제도적 평등을 끌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맬컴 X는 마틴 루서 킹과 함께 그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여러 면에서 두 사람은 대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마틴 루서 킹이 비폭력 저항 운동을 이끌었던 남부 지역의 기독교 목사였다면, 맬컴 X는 백인에게 당당하게 맞설 것을 주장하며 북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슬람 활동가였죠.
비극적인 암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공통점 외엔 사후의 평가도 달랐습니다. 마틴 루서 킹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미국에는 그를 기리는 국가 공휴일까지 있을 정도지만, 맬컴 X는 흔히 폭력을 선동한 사람이자 흑인의 우월성을 주장한 분열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비극적 죽음마저 진실이 밝혀지기를 꺼리는 사람들에 의해 묻혀 있었죠.
이제 미국에서는 법적, 제도적으로 인종 차별은 없어졌습니다. 흑인 대통령이 나올 정도가 됐으니까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차별은 여전합니다. 사회 경제적 격차가 맞물리면서 흑백 거주 구역의 분리는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고, 백인 경찰이 흑인 시민에게 자행하는 폭력은 잦아들 줄을 모릅니다. 심지어 트럼프 집권 후에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공공연히 그릇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정신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불의에 당당히 저항하라는 맬컴 X의 메시지는 뒤로 미뤄두었던 미국 주류 사회의 태도가 낳은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덮어두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 바랐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된 것은 아닐까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고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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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