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단편영화 '실'의 조민재 감독
조민재
- 배우가 된 어머니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어땠나.
조민재: "어머니가 좋은 경험이니 겪어나가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배우를 따로 섭외하고 미싱 자문을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그 몸에 담긴 역사는 결코 따라 할 수가 없겠더라. 무엇보다 어머니가 미싱을 돌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연기라는 건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상대 배우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때 어머니가 포용력이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들과 같이 연기하면서도 어머니는 이들을 감싸주듯 연기했다.
어머니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화에 묻어났다. 어머니는 제게 하는 것만큼 자신의 공간에 오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어머니가 앞으로도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창신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실>의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조민재: "창신동이 지난 2015년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외부의 예술가나 활동가가 창신동에 많이 유입됐다. 그런데 제대로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게 되지 않았다. 활동가들이 단발적으로 성과를 내고 싶어서 영상물을 촬영했는데 그게 나는 이미지의 착취라고 느꼈다.
쇠락한 풍경을 영상에 담는 것으로 활기를 채우려 했지만 사실 뭔가를 착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만드는 영상이 과연 정확할까. 결국 2년 정도 후에도 성과가 안 나오니 서울시가 자금을 끊었다. 그 뒤 대부분 창신동을 떠났다. 2016년부터 <실>의 시나리오를 썼고 2019년 9월에 제작 지원을 받아서 촬영에 들어갔다."
- 주인공이 직업 배우가 아니라서 촬영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나연: "(영화에서 이주여성으로 등장하는) '흐엉'이 옷 주머니를 예쁘게 달지 못해서 명선에게 도움을 구하는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에는 '흐엉이 도움을 구하러 온다'는 상황이 적혀있고 현장에서 디테일을 결정해야 했다. 명선 배우가 '이런 장면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각자 공장을 차린 기술자라면 이렇게 도움을 구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이 장면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하셨다.
실제 봉제 노동자들과 함께 영화를 봐도 거슬리는 부분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이 장면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었다. 흐엉이 아이디어를 줘서 장면을 완성했다. 감독으로서 배우와 잘 소통한다는 건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었다. 배우의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다."
조민재: "처음으로 하루에 9시간씩 촬영했고 근로기준법에 맞춰서 작업했다. 물론 임금도 최선을 다해서 지급했다. 제작 지원을 받긴 했지만 사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킬 것을 다 지키고 나니 하나도 남지 않는 상황이 됐다. 그렇지만 뿌듯했다. 하나의 가능성을 본 것 같았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보통 임금에 대해서 당연하게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창작 행위를 한다는 명분 아래 폭력을 행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몸에 담긴 노동을 쉽게 빼앗는 것이기에 고민이 필요하다. 그 어떤 현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모든 게 너무 당연해진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사람을 힘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저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엄밀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문제다. 이번 현장에서 그 구조를 만들어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밥 먹을 때 다들 농약 친 제품 먹기 싫어하지 않나. 그런데 왜 영화는 그렇게 대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