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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세간의 압박... 그들 위한 노래"

[인터뷰] 핫펠트, 첫 정규 앨범 < 1719 > 발매

20.04.23 14:44최종업데이트20.04.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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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 인터뷰 이미지 ⓒ 아메바컬쳐

 
핫펠트가 긴 공백을 깨고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핫펠트를 만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솔직한 그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23일 발매되는 첫 정규앨범 < 1719 >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핫펠트가 겪었던 일,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낸 자전적 앨범이다. 더블 타이틀곡 '새틀라이트(Satellite)'와 '스윗 센세이션(Sweet sensation)'을 포함해 14곡이 수록돼 있다.

핫펠트는 "오랜 기간 작업했기 때문에 제 시간이 담겨있기도 하고 땀과 눈물, 애정까지 모든 게 담겨 있는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에 작업한 곡이 절반 정도다. 그 당시에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곡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개와 늑대의 시간, 해가 지는 시간을 테마로 했다. '1719'라는 앨범 제목에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해가 지는 시간에 대한 의미도 내포돼 있다. 또 17살과 19살 사이이기도 하다. 스무살이 되기 전의 방황, 사춘기 소녀가 된 느낌으로 작업했다. 2017년 당시에 발표했다면 (앨범 분위기가) 더 어두웠을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따뜻하고 희망찬 곡들이 많이 추가됐다."

정규 앨범이 공개되는 날 핫펠트는 동명 스토리북도 함께 발간한다. < 1719 > 앨범의 트랙과 각 챕터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에세이집으로, 음악 이야기부터 인간 박예은의 개인적인 고민까지 본인만의 문체로 풀어냈다. 핫펠트는 이 에세이를 발간하기 전 가족들이 가장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가족들에게 가장 보여줄 때 가장 떨렸다.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도 됐다. 엄마는 오히려 시원해 하시더라. 제가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셨고, 엄마도 속시원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셨던 부분들이 있었다. 가족들이 '우리 걱정하지 말고 하고싶은 걸 하라'고 응원해줬다. 저 역시 글을 쓰면서 엉켜 있던 감정들이 정리가 됐다. 그 감정들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동안은 뒤섞여 있었다면 이제는 분리가 돼서 맞는 서랍 안에 들어간 느낌이다." 

'잠겨있는 시간들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스토리북 첫 페이지에는 "제 삶에서 가장 어둡고 지독했던 3년 동안의 일들을 음악과 글로 풀어낸 묶음집이다. 무거운 얘기는 부담스럽거나 우울한 얘기는 보고싶지 않은 분들은 책을 다시 덮어도 좋다"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책에는 꺼내기 쉽지 않을 법한 핫펠트의 무거운 고민도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

핫펠트는 "사실 '잠겨있는 시간들에 대하여' 외에 부제 후보가 하나 더 있었다. 직설적인 화법을 좋아하는 터라 '나도 사니까, 너도 살아'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보고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 희망적인 책은 아니지만 함께 아픔을 나누면서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계속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핫펠트 인터뷰 이미지 ⓒ 아메바컬쳐

 
이날 인터뷰에서는 지난해 연이어 안타까운 선택을 한 고 설리, 구하라 등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핫펠트는 과거 걸그룹 원더걸스의 멤버였던 시절을 회상하며, 후배 아이돌들에게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자신을 사랑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저도 안타까웠다. 그런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지금도 많은 아이돌 분들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어떻게든 뭘 해도 좋으니 살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그만둬도 되고 범법이 아닌 선 안에서 뭐든 하고 싶은 걸 다 해봐도 좋다. 뭘 하고 싶지? 내가 뭘 보고 싶지? 뭘 먹고 싶지?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살 이유를 하나 더 만들었으면 좋겠다. 

저도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성공하는 것, 목표에 다가가는 것에만 집중해서 살았다. 그때는 인간 박예은이 즐기는 것들은 전부 죄책감으로 다가오는 시절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친구들을 만나는 것, 연습을 하지 않는 것. 나는 기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컨트롤 하려 하고, 그렇지 않은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반복이 있었다. 자신에게 더 관대해지고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이번 앨범에는 '라이프 석스(Life sucks)', '스카이 그레이(Sky gray)' 등 영어 가사로만 쓰인 곡도 포함돼 있다. 앞서 백예린, 에릭남, 김예림 등 여러 가수들이 영어 가사로만 쓰인 곡을 발매했으며 백예린의 '스퀘어(Square)'는 영어 가사로 첫 국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팬들과 소통하기엔 영어로만 쓰인 곡은 장벽이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핫펠트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팬분들이 한글로 이 가사를 맞닥뜨렸을 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저도 그 곡들을 표현하기에 영어가 훨씬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을 쓰던) 당시 미국 뉴욕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영어 일기를 많이 썼다. (제작 과정에서) 한글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곡의 정서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대로 실었다"고 해명했다. 
 

핫펠트 인터뷰 이미지 ⓒ 아메바컬쳐

 
지난해 9월 JTBC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출연한 핫펠트는 "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걸 왜 눈치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당당한 소신을 밝혔다. 이전에도 핫펠트는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을 보고 SNS에 소감을 쓰고 이를 비난하는 누리꾼에게 일침을 날리는 등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왔다. 최근 페미니즘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반대로 그에 대한 백래시(반발)도 거세지고 있는 분위기이기에 분명 쉽지 않은 행보였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핫펠트는 이에 대해 언급했다.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어떤 대단한 결심이 있었다기 보단 < 82년생 김지영 >으로 시작됐다. 저도 김지영처럼 언니가 있고 남동생도 있는 둘째다. 책에 제가 겪었던 일, 언니나 엄마가 겪은 일이 담겨 있었다. 현실적이라 공감한다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거기서부터 뭔가 시작된 것 같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선 숨기거나 감추고 싶지 않다. 제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이 대화하면서 맞는 방향을 찾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 1719 > 앨범에도 핫펠트가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곡이 포함돼 있다. '블루버드(bluebird)'에서 핫펠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날아가 초록 바다 위로. 스치는 바람에 움츠러들지 마"라고 노래한다. 그는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시선이나 편견 때문에 움츠러드는 일이 많다"며 그들을 위한 노래라고 말했다.

"'블루버드'라는 곡은 제 이야기이고 제가 여성으로서 느꼈던 감정을 파랑새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여성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곡을 쓸) 당시에는 여성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세간의 시선이라든가, 사회적인 압박을 생각했다. 하지만 연예인이 아니라 보통 여성들도 편견이나 차별 때문에 움츠러드는 일이 많지 않나. 그런 건 저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블루버드'는 제 얘기를 담은 곡이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핫펠트 1719 스토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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