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찬.
TV조선
정상적인 정치 시스템이 마비되고 백성들이 주먹과 곡괭이를 들고 일어서는 이 혼란한 세도정치의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 시대에 정권 장악을 가능케 했던 키워드가 바로 그것이다. 어수선한 상황과 너무나도 판이한 키워드, 그것은 바로 '혼인'이었다.
정조 임금이 1800년에 만 10살 된 순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자, 정권은 정조의 새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와 경주 김씨 가문에 돌아갔다. 정순왕후가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이 가문이 정권을 잡게 된 것이다. 경주 김씨인 정순왕후가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와 혼인해 왕후 지위를 획득한 데 더해, 증손자인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 경주 김씨 집권의 실마리가 됐다.
오늘날의 대통령 부인은 법적으로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할 뿐, 공식 지위를 갖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부인도 관저를 나가야 한다. 이와 달리 왕후는 독자적 권한이 있었다. 궁녀들로 구성된 내명부를 이끄는 것은 물론이고, 신하들의 부인으로 구성된 외명부를 이끌었다. 그뿐 아니었다. 왕이 도성을 비우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는 임시로나마 최고 권력을 행사했다.
그에 더해, 왕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면, 새로운 왕을 결정할 권한도 있었다. 대통령 부인의 취임식은 없어도 왕후의 책봉식은 있었던 것은, 왕후가 갖는 그 같은 독자적 위상 때문이었다.
정조 사후에 임금은 나이가 어린 반면, 전직 왕후인 정순왕후는 대비로서 정권을 운영할 능력이 있었다. 그런 정순왕후의 일족이라는 지위를 발판으로 경주 김씨는 세도정치시대의 첫 번째 집권당이 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803년, 순조는 만 13세 나이로 친정 체제에 돌입했다. 이로써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경주 김씨의 세도는 3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런데 형식상으로는 순조가 직접 정치를 하게 됐다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순조에게는 김조순이라는 장인이 있었다. 김조순은 순원왕후의 아버지다.
사돈인 정조로부터 순조를 부탁받은 김조순은 정조의 유지를 앞세워 일족에 의한 세도정치를 개시했다. 순조의 친정으로 경주 김씨가 힘을 잃은 틈을 타서 그 유명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첫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배우 손병호가 연기하는 <간택> 속의 안동 김씨가 권력을 갖게 된 계기는 그것이었다. 경주 김씨가 그랬던 것처럼 안동 김씨 역시 왕후를 배출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시대의 집권당이 됐던 것이다.
왕실과의 결혼을 명분으로 집권당이 된 집안
▲조흥견.
TV조선
안동 김씨의 세도가 그로부터 24년간 이어지다가, 1827년에는 새로운 집안이 세도정치 가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간택>에서 배우 이재용이 연기하는 풍양 조씨 가문이 바로 이때 등장했다. 이 집안 역시 왕실과의 혼인을 배경으로 집권당이 될 수 있었다.
1827년이면 순조가 아직 살아 있을 때다. 순조는 1834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풍양 조씨가 세도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 권한을 부여했고 효명세자의 처가가 바로 풍양 조씨였기 때문이다. 이 집안 역시 왕실과의 결혼을 명분으로 집권당이 됐던 것이다.
그 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정권을 주고받는 양상이 이어졌다. 최초의 세도가문인 경주 김씨가 퇴장한 가운데, 후발주자 2곳이 이 시대를 주도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다가 1849년에 안동 김씨가 '강화 도령' 철종을 옹립한 뒤로는 안동 김씨의 시대가 계속 이어졌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아들 고종을 앞세워 왕권 강화를 추진하기 전까지 안동 김씨의 세도가 계속됐던 것이다.
세도정치시대에 조선왕조의 시스템은 허약해지고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까지 쌓여만 갔다. 이토록 혼란스럽고 암울한 시기에 정권 획득의 키워드는 뜻밖에도 '혼인'이란 단어였다. 권력투쟁과 거리가 있는 '결혼'이라는 뜻밖의 단어가 이 시대의 권력장악 수단이 됐던 것이다. 시대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가 이 시대의 권력 장악을 설명하는 단어가 됐던 것이다.
역사 속의 혼란스럽던 시대에는 창검으로 대표되는 군사력을 동원해 권력을 잡는 일이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의 왕명을 빌려 정적들에게 사약을 먹이는 방법으로 정권을 차지하는 일도 많았다.
창검이나 사약이 권력투쟁 수단으로 부각되던 시기와 비교할 때, 세도정치시대에는 왕실과의 혼인이 정권을 잡는 주된 도구로 활용됐다.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을 수 있거나 그런 관계를 이용할 역량이 있는 가문들이 이 시대의 주역이 됐다.
창검이나 사약을 활용해 정권을 잡을 구상을 하던 여타 시기의 정치집단들과 달리, 이 시대의 가문들은 어떻게 하면 혼인관계를 활용할 수 있을까 하면서 열심히 두뇌를 가동했다.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혼란한 이미지와 비교한다면, 이 시대의 정권 장악 수단은 상당히 낭만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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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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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농단에 민란까지... 뜻밖의 권력 장악 수단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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