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2002 히딩크와 2019 벤투의 결정적 차이점

[주장] 벤투의 완고한 '답정너' 마인드, 히딩크와 달라

19.12.16 15:37최종업데이트19.12.16 15:37
원고료로 응원

15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중국 경기에서 승리한 한국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리더는 누구나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매일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일수록 자존심과 고집도 대단하다. 하지만 프로는 결국 성과로서 증명해야한다. 리더가 납득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소신과 아집의 차이도 갈린다.

2019년 현재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 대표팀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화두는 역시 '점유율 축구'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후 공을 오래 최대한 소유하며 후방에서부터의 빌드업과 짧은 패스를 통하여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를 추구하고 있다.

대표팀은 현재 출전중인 2019 동아시안컵에서도 점유율 축구를 앞세워 홍콩(2-0)과 중국(1-0)을 상대로 쾌조의 2연승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순항하는 듯한 모습과 달리 대표팀의 경기력을 바라보는 세간의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전력상 한 수 아래인 홍콩과 중국을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정작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장면이 부족했다. 1, 2차전에서 터뜨린 총 3골이 모두 세트피스 득점이었고 유기적인 플레이에 의하여 만든 득점은 전무했다. 지난 경기까지 포함하면 무려 A매치 '6연속 필드골 무득점'이다. 비효율적인 점유율에만 집착하고 '밀집수비'에 대한 확실한 공략법과 '플랜B'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거듭되는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벤투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축구철학에는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고수하고 있다. 벤투 감독은 중국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득점 효율성'에 대한 지적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지금까지 유지한 플레이 스타일과 철학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줄곧 협회나 선수들과도 공유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들었다. "수비적으로 팀을 운영하다가 역습을 추구하는 식의 전술도 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는 (점유율 축구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이나 여론의 비판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내가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할 일은 팀을 더 조직적으로 만드는 것뿐"이라고 답변했다.

요약하면 결국 누가 뭐라해도 벤투 감독 본인은 점유율 축구에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골결정력의 효율성 문제는 지금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조직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벤투 감독이 해온 답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벤투 감독의 태도를 과연 소신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아집으로 봐야할까. 벤투 감독이 자신의 축구철학에 대한 확신을 강조할수 있는 이유는 일단 표면적인 성과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벤투호 출범 1년 동안 총 24번의 A매치에서 14승8무2패로 단 2번(카타르, 브라질)밖에 지지 않았다. 동아시안컵에서도 내용이야 어쨌든 무실점으로 2연승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점유율 축구 스타일을 강조했던 전임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부임 초기 2015 아시안컵 준우승과 월드컵 2차예선 무실점 전승으로 승승장구했으나, 최종예선에 들어서며 경기력이 점점 하락한 끝에 결국 경질당했다.

역대 대표팀 감독치고 한번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충돌을 겪지않은 감독은 없다. 지금이야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존경받는 거스 히딩크 감독도 2002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흔히 히딩크 감독하면 프랑스-체코전의 '오대영' 참사나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북중미 골드컵에서 부진 등이 최대 고비로 거론된다. 당시 히딩크의 '월드컵 프로젝트'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국내 언론과 축구인들은 "한국축구는 체력은 좋은데 기술이 문제다. "베스트 11을 조기에 확정짓고 조직력을 끌어올려야한다", "왜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는 기용하지 않는가", "대표팀에 어울리는 것이 3백인가 4백인가", "김남일-박지성같이 검증되지 않은 선수들을 왜 자꾸 투입하는가" 등을 지적하며 히딩크 감독을 비판했다.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주장도 많지만. 당시에는 꽤 심각하게 거론되던 논쟁들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한일월드컵을 통하여 자신의 계획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보였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통하여 선수들이 90분내내 특정한 플레이메이커나 에이스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활발하게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는 '압박축구'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또한 베스트11을 조기에 확정하지 않고 끝까지 경쟁체제를 유지한 덕분에 본선에서 선수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복수의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들을 중용한 덕분에 이탈리아전에서 홍명보-김태영 등 수비수들을 교체하고 공격수들을 대거 투입하여 역전극을 이끌어내는 승부수가 가능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무조건 '마이 웨이'만 고수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 포백이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축구에서 임기 초반 유럽식 포백 수비 전술을 도입하려던 시도가 한계에 부딪히자 히딩크 감독은 '일자형 스리백' 시스템으로 수정하며 현실과의 절충을 시도했다.

또한 '히딩크 축구'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기에는 한동안 전력에서 배제되었던 홍명보, 안정환, 김병지, 윤정환 등을 결국 최종엔트리까지 발탁하며, 전력 강화를 위해서는 본인의 축구와 성향이 다른 선수들도 최대한 끌어안으려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언론이나 국내 축구인들의 비판여론에 대해서도 무조건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협력과 긴장관계를 오고가는 '밀당'을 보여주기도 했다.

히딩크와 비교하여 지금의 벤투 감독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점유율 축구 철학이나 벤투 감독이 선호하는 선수들에 대한 소신은 존중받아아야 한다. 문제는 '다양성과 유연성'이다.

축구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게 아니다. 상대팀의 수준이나 우리의 상황에 따라 때로는 '뻥축구'를 해야할 때도 있고, 때로는 라인을 내렸다가 '선수비 후역습'을 해야하는 순간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노골적으로 한국축구에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 스타일만을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임기 동안에는 아예 수비와 역습 지향적인 축구를 하지않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다. 자신의 축구철학이 통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나 대안을 아예 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축구에 벤투 감독에게 4년의 시간을 보장한 것은, 벤투 감독 개인의 축구철학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벤투 감독의 위험한 아집에 한국축구 대표팀이 볼모로 잡혀서는 곤란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벤투히딩크 소신과아집사이 점유율축구 압박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