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스틸컷. 사태 수습에 지대한 공을 세운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는 비밀 경찰 KGB로부터 진실을 밝히지 말라는 압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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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큰 사건 사고가 나면 정부 당국자들은 흔히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실을 숨기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동물적 본능을 발휘하는 거죠. 정보를 통제해서 얼마든지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지위에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공동체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자기 한 몸 살자고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으면, 결국 모두가 공멸하게 됩니다.
체르노빌 사고에서도 그랬습니다. 초기에는 발전소 수뇌부가 사실을 축소 보고한 탓에 화재 진압에 나섰던 소방관들과 멋도 모르고 불구경을 했던 시민들은 심각한 피폭을 당해 모두 목숨을 잃습니다. 그러나 레가소프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한 셰르비나 같은 관료들의 조치가 있었기에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체르노빌>에 나오는 소련 정부처럼 후쿠시마 사고를 수습하고 관리해 온 일본 정부의 모습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에 소홀했고, 사후에 방사능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도 미흡했으며, 후쿠시마 재건을 정권 홍보용으로 쓰는 데만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스스로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나라임에도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한 대응은 이웃 국가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원인 제공을 했지만 최초 수소 폭발이 있기까지 어느 정도 수습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한 책임은 분명히 누군가가 져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초기엔 일본 검찰이 도쿄전력 관계자를 기소조차 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에서야 강제로 관계자들이 기소되었습니다.
원전 사고 초기 주민 대피 등 보호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는 방사능 폐기물이 곳곳에 쌓인 땅에서 농산물을 재배하여 유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를 2020년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하죠. 또한 그간 축적된 방사능 오염수를 처치 곤란이라며 해양에 그냥 방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바로 옆 나라인 우리나라는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일본의 과학자와 정치가들이 인간의 양심을 회복해 자기들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을 기대하기엔 일본의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로서는 주변국들과 공조하여 후쿠시마 문제를 국제무대로 끌어올려 압력을 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체르노빌>에 나온 소련 정부도 주변 강국에 대해 나라의 체면이 깎이는 상황은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최근에 불거진 일본의 경제 제재에 대한 대응처럼 타협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자세로 강하게 일본의 변화를 요구해야 할 시점입니다.
▲HBO의 드라마 <체르노빌>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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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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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과 구경하던 사람 모두... 일본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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