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CJ 엔터테인먼트
조직은 개인의 생명력을 먹고 산다. 조직은 특정 개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직은 자리에 어울리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뿐이다. 병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병두는 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예 알지 못했다. 병두는 자신의 형님인 상철을 죽이고 그 자리를 꿰찬 인물이다. 그랬던 그 역시 황 회장의 신의를 잃게 되자, 바로 자신의 오른팔인 종수에게 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생계형 조폭 출신 병두에게, 권력보다는 잡일이 어울렸던 그에게 조직은 너무 치열하고 철두철미한 곳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지우고 살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직 철없는 낭만이 있었고, 미처 놓지 못한 사회를 향한 미련이 있었다. 현주를 향한 사랑이 있었고, 민호와 나눈 우정이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인 종수에게는 언제나 형님이고 싶었으며, 황 회장의 일선이고 싶었다.
그랬던 그였지만 조직폭력배로서 발을 담근 사회는 자신에게 한없이 냉혹했다. 민호에게 그의 삶과 조직에서의 삶은 다른 세계였다. 그저 소비되는 이야기로 전락한 병두의 삶은 심지어 종수에게는 형님으로 비치지도, 조직의 일원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는 세상을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으로 분류했으며, 그 전제의 모순을 결코 알지 못했다.
물론 그는 오만하지 않았다. 그는 보통 사람이었다. 자기가 받아온 것처럼, 혹은 자신이 원했던 형님의 모습으로 조직의 일원들을 챙기고자 했다. 사랑과 우정도 찾고자 했다. 병약한 어머니를 챙기고 직계 여동생에게 용돈도 챙겨주고 싶었다. 그랬던 그에게 일수꾼 너머의 삶은 너무 가혹했다. 본능과 경험으로 손익을 구분했던 그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성장하지 못했다. '목숨을 걸고'라는 관용구를 내건 일들에서 실제로 죽음 그 자체를 생각할 수 있을까? 강한 결의쯤으로 치부하는 것이 보편적일 것이다. 병두의 인생은 정말 그러했다. 자신의 신분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그의 애절한 눈빛에서, 또 자신의 조직원들, 그러니까 자신의 이름에다 형님이 아닌 '조직의 치부' 따위를 씌웠을 그 옛날의 또 다른 자신에게 배신 당한 그 허망한 눈빛에서 필자는 그의 인간성을 느꼈다.
일원이기를 원했던 조직, '병두'로 살아가고 싶었던 사회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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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표현한 인간성은 고귀한 성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회라는 유기체의 일원이 아닌, 개인이자 인간 그 자체로 살아가는 그 모습이라는 말이다. 부속품이나 태엽 바퀴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의식 말이다. 결국 그가 속한 폐쇄적이고 은밀한 집단에서, 자의를 지우지 못한 행위는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어 버렸다.
사회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조직에 속하기에 병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때론 숨어야 했고, 더 먼 곳으로 달려가야 했던 병두는 자신이 열망하던 사회를 찾아 뒤를 돌아봤다. 결국 그 사회에 병두가 설 자리는 없었다. 정확히는 그 사회는 병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멜로나 드라마 장르를 소화한 조인성 배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조직폭력배를 연기한 조인성'이라는 구절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작품을 수작으로, 또 병두를 내 인생 최고의 캐릭터로 꼽는 이유는 조직 생활의 낭만으로 영화를 전개한 게 아니라 조인성의 비열하지만 처연한 인생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연코 이 작품을 보고 조직폭력배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가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호봉이나 계급 따위를 두지 않는 조직의 가장 선봉에 섰던 병두가 꿈꿨던 것은 그에게 가 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고 그것들을 좇았다. 상철이 사라진 자리에 앉은 병두는 사랑에 실패했을 때, 우정에 배신당했을 때, 자신이 그날의 형님처럼 사라져갔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은 결코 자신을 지우지 못한 '인간' 병두에게 바치는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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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의 비열하지만 처연한 인생... '그 영화'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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