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 스틸컷
(주)외유내강, CJ엔터테인먼트
누군가 말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순간은 그 사람의 '있음'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없음'을 발견하는 시점이라고. '없음'을 다른 말로 결핍이라고 해도 좋고, 결여라고 해도 좋다. 대부분의 사람은 매끈하게 완결된 사람보다 어딘가 결핍이 있어서 불완전한 사람에게 매혹된다. 그 '없음'을 내가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 없음을 채워주고 싶은 사람 역시, '없음'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의 '없음'이 너의 '없음'을 알아보면서 그러다가 깨닫는다. 너의 '없음'은 나의 '없음'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을 이입하고, 가까스로 타인의 내면까지 가닿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용남과 의주의 '없음'이란 곧 '생명'일 텐데(물론 둘의 생명이 결핍되진 않았지만, 생명이 위태롭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들의 생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들의 무사귀환을 나는 간절하게 바라곤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용남이 목숨을 잃게 된다면 누구보다 고통스러워 할 아버지, 어머니의 떨린 목소리를 들었을 때 더욱 절박해졌다.
목숨을 건질 기회가 올 때마다 번번이 타인의 목숨을 먼저 챙기는 아들의 선함을 때려서라도 말리고 싶지만 그래선 안되고, 또 그렇게 해도 듣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무력하게 다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부모님의 등을 봤을 때. 이런 순간들은 그들의 '없음'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내 준다.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도. 이런 순간들에서 내 마음은 일렁거린다. 너의 '없음'을 내가(나의 '없음'이) 알아본 순간이다. 그럴 때 나는 그들의 내면에 비로소 '거의' 다가선다. 용남과 의주가 제발 살아남기를. 무사하기를 염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없음'을 채워줄 수 없으므로, 한계 안에 갇힌 간절함만 속절없이 불어나고 있었다. 너의 '없음'이 채워지기를 빌며.
그래서 눈물겹도록 감사했을까. 어느 날 들려온 '살았대!'라는 소식이 그토록 고마운 이유가. 아버지(박인환 분)는 무사히 돌아온 아들 용남을 향해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하며 눈물 흘리고, 모두가 체념할 무렵 끝내 발견한 소녀를 향해 '살아있어서 고맙다'라고 말한 육군 박상진 상사의 말까지.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내가 채워주지 못한 너의 '없음'을 기적처럼 누군가가, 혹은 무엇이 채워주었으므로,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그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며 깊숙이 감사를 표하는 걸까.
깊고 아득한 밤에서, 글을 쓰면서 문득 떠올랐다. 아무리 무거워도 묵묵히 자기 생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이들이, 그 속에서 감탄하고 놀라워하며 즐거워하는 이들이, 이 도시의 안녕이. 잠든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영화 <엑시트>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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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소녀 생환에 감사함 느낀 이유, '엑시트' 보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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