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 1차 시나리오 표지. '원안 박해진'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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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원의 판단 이후에도 나녹과 박 작가 측은 계속해서 '원안'을 주장하고 있다. 법의 테두리에서 표절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화의 많은 부분을 책에서 차용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영화에서 세종이 '나는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너는 부처를 내려놓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신미가 '저는 부처를 타고 가겠습니다. 전하는 공자를 타고 오십시오' 하는 대사가 있다. 이건 내가 <훈민정음의 길>을 마무리하면서 신미 스님과 대화를 나눈다는 가정하에 쓴 글을 따온 것이다(639쪽). 오랜 연구에도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을, 스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말해주시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써 내려간 글인데 왜 나의 창작물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박해진 작가와 출판사 나녹 측은 조철현 감독이 먼저 박 작가에게 원안자로서 시나리오 자문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영화사에서 출판사에 원안계약서를 보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감독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스스로 인정했는데, 왜 이 부분은 고려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박 작가는 30차례 이상 조철현 감독과 이송원 각본가 등을 만나 자문해줬고, 박 작가의 또 다른 직업인 고건축물 사진가라는 장기를 살려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영화에 등장하면 좋을 사찰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박 작가는 이를 대가로 자문료를 받았고, <나랏말싸미> 엔딩 크레디트에 '자문'으로는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자문료와 원안 인정은 별개의 일"이라는 입장이다.
박 작가는 "내 책을 원안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자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라고 주장하며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과외 해주듯 취재한 내용을 설명해줬고, 영화에 등장할 사찰을 추천해주고 사전 답사까지 같이 다녔다"고 말했다.
또 "감독이 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는 부분은 스스로 인정했다. 제작사도 받아들였기 때문에 원안 계약을 제안한 것 아닌가. 이제 와 이러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발된 원안계약서 보니
박 작가의 <훈민정음의 길> 저작권을 대리하고 있는 출판사 나녹 형난옥 대표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형 대표는 "<훈민정음의 길>은 박해진 작가와 내가 오랫동안 고생해 만든 책이지만, 너무 두껍고 어려워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는 힘든 책이었다. 그런데 감독이 먼저 원안을 제안했고, 우리는 영화를 통해 책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저 이 책이 영화 <나랏말싸미>의 원안이 된 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면, 그를 통해 책을 홍보하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영화사 두둥이 나녹에 보낸 원안계약서에도 원안 인정 이후 추가적으로 원안료를 지급한다거나, 영화로 인한 수익에 출판사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부분은 없었다. 원안 인정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박해진 작가에게 이미 지급된 자문료 4천만 원으로 갈음하고, 박 작가는 자신이 받은 4천만 원 중 일부를 출판사에 제공하겠다는 내용에 동의했다.
형 대표는 "영화 제작사가 보내온 원안 계약서 내용에 불만을 품거나, 추가로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작사의 계약서 내용 그대로 계약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배급사에서 원안 계약 체결에 반대한다면서 계약 진행이 어렵게 됐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영화사 대표 "책, 영화의 원안도 원작도 아니다"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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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영화사 두둥 오승현 대표는 "엄밀하게 말해 <훈민정음의 길>은 영화 <나랏말싸미>의 원안도, 원작도 아니다. 법적으로나, 통상적인 기준으로나, 무엇으로 보나 영화와 책은 별개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원안 인정에도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조철현 감독은 오랜 시간 신미 대사를 연구해온 박해진 작가의 노력을 존중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 감독의 의사를 존중해 원안자로 인정하고 계약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원안 계약은 영화 제작사 측의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불발됐다. 오 대표는 "처음 박해진 작가에게 자문받을 때는 출판사와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후 박 작가가 원안 계약은 출판사와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출판사가 논의에 참여하게 됐다. 조철현 감독과 박해진 작가, 형난옥 (나녹) 대표, 나, 중재자로 나선 동출 스님, 이렇게 모여 계약서에 대한 내용을 다 합의했는데, 계약서를 전송하고 나니 '절차상의 미숙함(출판사와 처음부터 논의하지 않은 것)을 문서로 남겨라. 그게 계약의 전제 조건'이라고 하더라. 반성문이라도 쓰라는 말인가 싶어 굉장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또 "원안으로 인정해줄 이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순전히 감독의 선의와 감독의 의사를 존중하려는 나의 선의로 원안 계약을 하려 했다. 그런데 반성문을 문서로 남기라니. 이건 내 자존심과 영화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서로 남은 기록을 저쪽에서 악용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굳이 이런 불안감과 의심, 불쾌함까지 안고 원안 계약을 할 이유가 없었다. 배급사와 감독도 그렇게 설득해 계약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형난옥 대표는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절차상의 실수가 있었으니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영화를 상대로 표절을 제기한 출판사들이 많지만,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예가 없다고 들었다. 출판인들이 느끼는 표절의 기준과 법이 인정하는 표절의 기준 사이에 분명한 온도차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형난옥 대표는 "최근 조철현 감독이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입장문을 내면서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일의 어려움과 가치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 영화의 취지'라고 했더라. 그런 분이 한 사람이 15년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저술한 책의 크레디트를 영화에 박는 일을 그리 어려워하셨다는 게 아이러니다. 훈민정음창제사에 '신미기여설'이 처음 영화로 만들어지는 만큼 서로 협력해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왜곡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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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감독이 먼저 '원안' 제안... 일방적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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