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교토의 우츠보 공원의 집
(주) 라라아비스, 영화사 진진
"롱샹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빛으로 홍수가 난 듯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빛을 추구하기만 해도 건축이 가능하다고 가르쳐주는 듯했다."
빛으로 홍수가 났다는 그의 표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연과, 세계 앞에 선 그의 태도가 어떤지 전달됐기 때문이다. '빛의 교회', '물의 교회', '물의 절'을 포함해서, 그의 초기 건축물인 'Azuma House'까지, 그는 늘 꽉 막힌 건물 안으로 빛과 바람이 언제든 스며들도록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빛, 물, 바람, 나무는 그에게 단순 '배경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엄연히 물성을 갖춘, 또 하나의 건축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보고 정체 모를 경외감 혹은 숭고함을 느낀다면, 그가 먼저 갖고 있는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감이 어떤 경로로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대지 위에 건물을 지어 올리는 건축가의 겸허함 같은 것을 느낀다. 건물은 인공적인 재료로 지을 수 있지만, 건축은 자연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그렇게 믿어온 장인의 말씀 같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자연친화적을 넘어서, '자연 경외적'이라 할 정도인 그는 왜 주재료로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했는가이다. 콘크리트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재료이며, 낮은 공사비로 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다 노출 콘크리트가 가진 잠재성을 발견했다고.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으로 콘크리트만 부으면 어떤 형태든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만들고 싶은 공간을 더욱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한다.
노출 콘크리트는 내부, 외부가 하나의 일체로 구성돼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재료의 '실체'는 추상화되거나 옅어지며, 어떤 '공간'이 내부를 감싸는 듯한 '공간 체험'이 극대화된다. 또한 다른 재료가 함께 쓰였을 때 일어나는 시선 분산, 부분적 표현이 부각되는 것을 막는 효과도 갖는다. 재료로서의 '실체'는 사라지고, 무언가의 '공간'만이 감싸는 듯한 감각. 이때, 공간으로 스며드는 빛과 바람 등의 '자연성'은 더욱 강조된다. 그러므로, 안도 타다오에게 둘째 조건(적합한 재료)은 필연적으로 '노출 콘크리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건축을 포함한 예술의 본질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지추 미술관
(주) 라라아비스, 영화사 진진
이제, 좋은 건축물의 셋째 조건(공학적으로 배치)을 살펴볼까. '미니멀리즘'이라고 불리는 그의 건축물은 정방형, 원형 같은 순수한 기하학 형태를 적극 사용한다. 사실 자연은 유기체적이어서, 질서가 특정되지 않는다. 그것을 '비 질서'라고 한다면, 기하학적인 그의 건축물은 그곳에 '질서'를 부여시킴으로써, '비 질서-질서'를 상호 대립시키고자 한 셈이다.
대립은 긴장을 일으키는데, 그 긴장이 신선한 공간감을 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건축물 내부로 들어가 볼까. 외부가 '비 질서(주변 경관)-질서(건축물)'의 긴장이라고 한다면, 내부는 '질서(정방형)-질서(원형)'의 긴장이다. 내부를 엄격하게 완결된 '원형'과 '정방형'으로 구성하면, 각각은 '확정적인 공간'이지만, 그 둘이 맞닿는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미확정적인 틈새 공간'이 생긴다. 의도적으로 긴장을 일으켜 내부의 깊이감과 역동성을 부여하려고 한 것이다.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의 글로 안도 타다오 건축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논리 전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건축, 문학을 포함한 모든 종류로서 예술의 좋음은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고, 나는 믿는다. 순서를 바꾸어도 좋다.
적합한 재료를 사용해, 공학적으로 배치된 예술은 우리에게 하나의 인식을 전해준다. 인식을 전달받은 우리는, 다시는 그 예술을 접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 삶에 무심히, 그러나 단호히 그어진 '좋은' 예술의 선은 우리를 이전과 전혀 다른 우리로 만든다. 그로 인해 우리는 비록 더디지만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각각의 '나'라는 또 하나의 건축물을 지어 올리는 중이다. 좋은 예술(적합한 재료)을 사용하여, 삶을 정돈시켜서(공학적으로 배치), 그렇게 지어진 '나의 삶'을 목격한 타인에게 또 하나의 인식을 생산해주도록. 지금 나는 나를 짓는 중이다.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빛의 교회'
(주) 라라아비스,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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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가를 보며 든 생각, 문학과 건축의 본질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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