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주)영화사 진진
7.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처럼 안도 타다오는 르 코르뷔지에의 압도적 영향권 아래서 출발했지만, 그가 도달한 세계는 이미 그의 스승을 뛰어넘었다. "빛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이 증명"(같은 책 99쪽)했다고 그는 말한다. 르 코르뷔지에게서 배운 빛의 철학의 연원은 어디서 왔을까?
"중학교 1학년 때 우리집 2층을 수리한 적이 있다. 그때도 목수 곁을 지키며 간단한 작업들을 신명나게 도왔다. 공사가 시작되자 집안 풍경이 금세 바뀌었다. 지붕에 창을 내자 축축하고 컴컴하던 집에 새하얀 빛이 비춰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깊은 감동을 느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중)
8.
요컨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 오사카에서의 추억과 감동이 르 코르뷔지에의 구체적인 건축철학과 만나면서 그의 빛의 철학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던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는 빛과 물과 바람과 소리 등 자연을 건축 안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안도 타다오가 물을 그의 작품속에 끌어오는 방식을 그의 고향에 소재한 오사카성(大阪城)의 해자(垓子)에서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 내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세계를 접하기 훨씬 전에 오사카성을 구경한 인상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조만간 안도 타다오의 고향이자 그의 수많은 작품이 산재한 오사카를 다시 방문하여 그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오사카성과의 연관성도 밝혀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9.
그는 노출 콘크리트 같은 투박하고 거칠며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집을 짓지만, 그가 지은 건축물 안에 일단 들어서면 자연의 모든 요소들은 자신이 만든 건축물을 떠받쳐 주는 배경으로 변해버린다.
그가 만든 건축물 속에 들어가는 순간 자연의 빛은 그 집의 조명이 되고, 물은 그 집의 연못이 되고, 바람은 그 집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무대장치가 되고, 소리는 그 집의 음악이 된다.
10.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건축물 몇 개를 보고나면 그의 설계 패턴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만큼 그는 절제의 미학, 단순함의 극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처음 접한 순간 그의 마니아가 된 것은 아마도, 나의 인생 모토가 안도의 건축미학과 상통하는 '쉽고 간단함(Easy & Simple)'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건물은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가 다르다. 안도의 건축들은 보는 시간에 따라 빛이 변하고, 보는 계절에 따라 그가 계산해 넣은 풍경이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안도의 작품을 보는 나의 시각도 마음도 따라서 변한다. 그가 끌어들인 빛과 물과 바람이 인공이 아니라 자연의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안도 타다오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자연 소재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형되고 때가 묻어서 거기에 기억을 새겨 넣을 수 있다."
11.
영화 <안도 타다오>는 이러한 심오하지만 심플한 그의 건축철학, 건축미학을 깊이 있게 인문학적으로 탐구하는 예술영화는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본질에 충실하게 그의 작품이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과정을 쉽고 단순하게 풀어낼 뿐이다. 아마도 안도 타다오의 작품세계를 좀 아는 이들에게는 다소 건조하고 밋밋하여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장의 육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스럽다.
몇 년 전 암에 걸려 췌장과 비장을 떼내는 큰 수술을 하고도 건강을 되찾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거장을 바라보면서 그가 왜 사무라이 건축가로 불리는지, 그가 왜 명장(名匠)이자 명장(名將)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좋은 필름이다.
안도 타다오가 '치열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서 더 좋은 작품을 계속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신체 근육도 '창조적 근육'도 안녕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예술영화로 분류되어 상영관이 많지 않다. 놓치지 말고 보시기를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