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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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엄마에게 짐이 되는 자신의 존재를 미워하며 컸다. 사실은 늘 엄마의 사랑에 목말랐으면서, 평생 목마름을 감툰 채 외롭게 자랐고 쓸쓸하게 늙어 갔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믿으며, 그런 엄마를 미워하면서. 늙은 딸 혜자를 바라보는 아빠의 착잡한 표정은 그의 복잡한 심경을 절묘하게 담아냈다.
늙어버린 딸의 처지를 애처로워 한다기에는 어딘가 미진한 그 표정, 압권이다. 그 이유를 결말의 반전이 해소해 주었다. 자신의 딸로 돌아가, 엄마로서 그때 다 보여주지 못한 사랑을 지극한 효심으로 드러내는 마음이 어찌 버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혜자의 '시간 여행'은 늙음으로 줄곧 우울하지 않다. 드라마는 곳곳에 유쾌한 유머를 배치하며 시청자를 웃게 한다. 시청자는, 혜자가 반드시 시계를 돌려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거야,를 믿기에 맘껏 웃을 수 있다. 그러던 웃음판이 결말의 반전으로 무너지며 슬픔의 판으로 급전직하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쓸쓸하지만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아, 정말, 혜자가 다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돌아가기 틀렸다고 자포자기한 혜자는, 시간을 돌릴 열쇠인 시계를 던져 버리지만 곧 후회한다. 패기 잃은 준하(남주역 분)를 다시 의욕에 찬 젊은이로 돌려놓기 위해 그 시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연히 그녀가 버린 시계와 똑같은 시계를 차고 있는 노인을 만나고, 시계를 취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실패한다. 이 노인은 대체 누구길래 그 시계를 차고 있을까.
혜자는 삶을 지배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받아들인다. 시계를 찾아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는 노인이 발휘할 수 있는 달관된 지혜다. 그 시절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지, 버릴만한 가치가 있을지 가늠해야 하지만, 그렇게 내린 판단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담보하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혜자는 늙은 채로 살아보기로 결정한다. 좋은 것도 있다고 위로하면서. 매일매일 열심히 살지 않아도 욕할 사람이 없어서 좋다는 혜자의 말은, 젊음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홀가분함을 던지지만, 어쩔 수 없이 웃프다.
'뒷방 늙은이'란 오명을 유쾌하게 걷어차다
늙음을 조롱하는 싸가지 없는 '젊은 것들'에게, "니들도 늙어 봐라, 마음은 그대로야. 몸만 늙어"라고 퍼붓는 혜자의 분노는, 늙어 '뒷방 늙은이' 취급당하는 노인의 서러움을 대변한다. 위험에 처한 준하를 구하기 위해 작당하는 노인들의 호기로움은 '뒷방 늙은이'라는 오명을 유쾌하게 걷어찬다. 이들은 불의에 도전한다. 늙음을 방패 삼지 않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다. 그로써 자신들이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임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들의 활약상은, '몸이 늙지 마음이 늙느냐'며 호기롭게 은행을 터는,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인생>의 노인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몸이 늙지, 마음은 이팔청춘인 것을.
<눈이 부시게>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은, 둘도 없는 우정을 과시한 혜자의 친구들, 현주(김가은 분)와 상은(송상은 분)이다. 이들은 진정한 우정엔 나이 따위는 장벽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혜자의 늙음을 탓하지 않고 자신들의 젊음을 자랑하지 않으면서 연결되는 이들의 우정은, '의리'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쾌활하게 증명했다.
비록 꿈을 이루기는 난망하고 사는 것은 지질하지만, 지친 서로의 등을 도닥여 주는 세 친구의 모습은, '각자도생'이라는 '헬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준다. 삶이 고달플 때, 기댈 존재가 반드시 가족일 이유는 없다. 애인이 아니어도, 배우자가 아니어도, 삶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관계는 언제나 가능하다. 힘들 때 마주 댄 등의 온기만으로,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고 도닥일 이 있다면, 그로서 족하지 않은가?
<눈이 부시게>는 마지막 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나아간다. 혜자의 시간 여행 판타지에 대한 기대와 긴장은 치매라는 파국에 급격히 다다르지만, 한꺼번에 서사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대체 왜, 라는 물음을 끝까지 가져가게 한다. <눈이 부시게>는 '치매가 정말로 혹독한 질병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치매란, 그 당사자에게는 시간 여행으로 기능하며, 잃어버린 시간과 회복하고 싶은 공간으로의 초대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그토록 애틋했던 자신을 만나 다시 사랑하기를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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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치매'는 그 자체로 공포다. 내가 보기엔 건망증이 분명한데도, 치매 검사를 받고 싶어 하는 내 엄마도, 당신이 치매일까 무척 두려워했다. 결국 엄마는 검사 결과를 받고서야 안심했다. 그런 엄마의 불안은, 노인에게 치매가 얼마나 극도로 치명적인 공포인지를 보여 준다.
사실 어디 노인뿐이겠는가. 치매 걸린 노인의 가족들의 공포 또한 막대하지 않던가. 치매를 공포로 만든 것은 그 병이 불치여서만이 아닐 것이다. 그 병을 처치 불가한 어떤 것으로 만든 국가의 잘못이 크다. 치매를 온전히 가족의 책임으로만 전가하지 않았더라면, 그 대처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공동으로 대응했더라면, 치매가 아픈 병일 수는 일을지언정, 공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이 부시게>가 의도하듯이, 혜자에게 치매는 사실상 시간 여행이다. 과거 어느 순간의 자신으로 돌아가, 못다 했던 삶을 다시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욕구는, 그녀가 시간 여행을 하며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혜자는 평생을 아들에게 헌신하고도 죄책감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의 딸이 되어 지극한 효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갚고자 했다. 지독히 슬픈 모성이다.
그녀는 잃은 남편을 애인으로 다시 살려내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그를 위기에서 구해냄으로써, 남편의 죽음에 무력했던 자신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애틋하다'는 혜자의 변(辯)은 곧 그녀의 시간여행의 대의(大義)인 것이다. 그녀는 시간 여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진했던 혹은 붙잡고 싶던 순간으로 돌아가, 이번엔 잘해보겠다는 투지를 계속 불사를 것이다. 그 시간 여행에선 몹쓸 엄마의 죄책감도, 아내로서의 무력감도 모두 털어낼 것이다. 그래서 찬란했던 청춘의 '눈부심'을 만끽할 것이다. 그토록 '애틋'했던 자신을 만나 다시 사랑하기를. 혜자와 모든 시간여행자들의 건투를 빈다.
극 중 상은이 부르는 '연분홍 치마'는 혜자의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헌사다. 연분홍 치마를 벚꽃처럼 흩날리며 사뿐히 걸어가는 혜자의 청춘을 보라. 아름답다.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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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떠난 혜자, 죄책감도 무력감도 모두 털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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