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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받는 시대인데..." 허구연이 야구계에 날린 일침

[인터뷰] <한국 야구의 가장 위대한 순간들> 허구연 프로야구 해설위원

19.03.17 16:20최종업데이트19.03.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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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히스토리 채널
 
"이대로라면 프로야구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야구계를 향한 일침을 쏟아냈다.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 가든 호텔에서 진행된 허구연 위원의 인터뷰에서였다. 허구연 위원은 오는 18일 첫 방송 예정인 히스토리 채널 프로그램 <한국 야구의 가장 위대한 순간들>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의 잊지 못할 명장면들, 야구 감독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 야구계 숨겨진 뒷이야기 등을 풀어놓는다.

1982년에 시작된 프로야구는 올해로 38년째를 맞았다. 원년부터 야구 중계를 시작한 허구연 위원이 중계 해설위원으로서가 아닌, 단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출연을 결정한 이유로 프로야구의 역사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나는 프로야구를 38년째 중계하고 있다. 그런데 쌍방울 레이더스가 없어지고 SK와이번스가 창단한 과정이라든지 태평양 돌핀스, 삼미 슈퍼스타즈가 어떻게 창단했고 사라졌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확하게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나조차 모르는데 야구 팬들은 더 모를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누가 알겠나. 그래서 37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9구단, 10구단 창단이나 고양 원더스 독립 팀 탄생하는 과정, 4대강 따라 야구장을 짓기까지. 이런 것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포츠에는 스타가 있어야 한다"는 허 위원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히스토리 채널
 
<한국 야구의 위대한 순간들>에서는 선동열, 최동원부터 류현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들도 조명할 예정이다. 허 위원은 역시나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로 위 세 사람을 꼽았다. 그러면서 메이저리그 신인 시절 류현진의 비하인드를 살짝 공개하기도 했다. 류현진이 스프링 훈련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뛰어오는 '편법'(?)으로 현지 팬들의 질타를 받았던 당시의 에피소드였다.

"류현진이 처음에 운동장을 '숏커트'(짧게 잘라) 돌았다. 한국에서 온 선수가 첫 시즌 훈련인데 중간에 돌아오니 건방지게 생각했을 것이다. 기사가 나오고 나서 기자에게 설명했다. '쟤가 그런(불성실한) 애가 아니다. 원래 못 뛰는 애다.' (류현진이) 담배도 많이 피우니까 반응이 안 좋았다. 그런데 잘하지 않았냐. 그 다음에 (그 기자를) 만났더니 '네 말이 맞다. 좋은 친구다'라고 얘기하더라.

내가 장담하는데 큰 게임 가면 류현진 만큼 던지는 애 (메이저리그에도) 별로 없다. 쟤는 그런 친구다. 두고 봐라 하고 얘기했다. 그런데 내 말을 안 믿고 2017년 월드시리즈에서 선발 라인업에 안 넣었다. 그때 우승했어야 하는데, 그게 아쉽다. 이제는 (LA 다저스가) 류현진을 잘 파악한 것 같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히스토리 채널
 
허구연 위원은 평소 해설을 할 때 두산 정수빈, 삼성 구자욱 등 어리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유망주 선수들을 집중 칭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사투리로 발음하는 "증슈빈 슨슈(정수빈 선수)"는 야구 팬들의 단골 놀림감이 될 정도. 허 위원은 웃으며 유망주를 주목하는 이유를 털어놨다. 

"스포츠에는 어쨌든 스타가 있어야 한다. 야구는 스타를 만들기가 굉장히 힘들다. 일본에서는 고교야구 스타가 프로야구 스타로 연결된다. 고시엔에서 잘하면 계속 기자들이 대학을 가든 프로를 가든 일거수일투족이 관심받는 스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강백호(kt) 만큼 잘하는 선수도 아마 야구 시절엔 주목받기 힘들다. 고교 야구 활성화가 안 돼 있어서 그렇다. 대중에게 알려질 수 없다. 그래서 신인 중에 괜찮다 싶으면 칭찬을 많이 해준다. 

물론 칭찬을 해주면 어린 선수가 '붕' 떠서 이상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미리 감독 코치에게 묻는다. 정수빈 선수 같은 경우도 당시 김경문 감독에게 물었더니 '쟤(정수빈) 얼마나 독종인 줄 아냐'고 하더라. 직접 여러 번 확인했다. 그래서 많이 칭찬한 것이다. 요즘에는 한화 정은원 선수나, 키움 김혜성, 롯데 한동희 선수 등이 눈에 띈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지적한 한국 야구계의 문제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히스토리 채널
 
올해부터 KBO는 국제 기준에 맞춘 공인구를 사용한다. 국제 대회에 대비하고 무엇보다 극심했던 '타고투저' 경향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이다. 8년 전 일본 프로야구도 공인구를 국제대회 기준에 맞추면서 선수들의 홈런 개수가 크게 줄어든 바 있다. 허 위원의 예측 역시 이와 비슷했다.

"아직 시범 경기라 선수들의 몸이 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많은 홈런이 나오진 않는다. 어쨌든 작년까지 사용한 공은 반발력이 굉장히 셌던 것만은 틀림없다. 홈런은 작년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변화구 투수냐, 속구 투수냐에 따라 차이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타고투저' 경향 보완에 대해선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배트의 질도 과거보다 굉장히 좋아졌고 타자들의 스윙 메커니즘도 좋아졌다. 지금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투수들의 질이다. 한국 투수들이 1년에 144게임을 소화할 정도인가. 외국인 선수들까지 압도할만한 투수의 숫자가 예전에 비해서 훨씬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허 위원은 리틀 야구에서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리틀 야구 때부터 '하드볼'(프로 선수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공)을 사용한다. 반면 일본의 아마 선수들은 소프트볼로 한다. 나이에 따라 강도를 조절한다. 우리는 리틀 야구부터 하드볼로 경기하니까 프로와 똑같은 셈이다. 투수와 포수의 거리도 같고 대회도 많다. 우리나라에 좋은 투수가 나오기 힘든 이유다. 신인이 프로에 오면 80%는 수술을 하지 않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옛날 같은 좋은 투수가 나올 수 없다.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같은 슈퍼스타들이 나올 수 없는 게 아쉽다. 개선되어야 한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1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히스토리 채널
 
마지막으로 허 위원은 야구계가 각성해야 한다고 날카로운 일침을 날렸다. 최근 몇 년간 야구계에서 선수들의 승부조작부터 도박, 학교폭력, 폭행, 성폭행 논란 등 팬들을 실망시킬 만한 뉴스가 쏟아졌기 때문. 프로야구가 지금은 국내 스포츠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는 이대로라면 팬들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때는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고 봤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 요즘은 인기에 도취돼서 왜 우리가 프로야구를 하고 있는지, 프로야구가 앞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야구계는 동반 성장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팬들의 수준은 높아졌다. 아저씨들이 라면 국물을 엎고 새총으로 선수들을 쏘고 그런 시대는 갔다. 여성 팬들, 가족 팬들도 많아지고 경기장은 여가의 장이 됐다. 그런데 야구계엔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만 많고 방향성은 잃었다. 이대로라면 스포츠 산업에서 야구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프로야구가 원년부터 여기까지 온 과정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잘해도 연봉 인상률 상한선이 25%였다. 동기부여가 되겠나. 선동열도 지금 같았으면 40살까지 던졌을 것이다. 해외에도 못 나갔다. FA도 없지 않았나. 지금은 100억을 받을 수 있는, 인기 좋은 시대다. 여기가지 온 과정을 알아야 한다. 
후배들도 (문제를) 알아야 하고 구단들도 알아야 한다. 현장도 좀 깨달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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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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