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세 번째는 토끼이다. 앤의 방에 있는 15마리의 토끼는 그녀가 유산한 아이들을 의미한다. 앤은 토끼 한 마리, 한 마리에 이름을 붙여주고 마치 아이처럼 기른다. 토끼가 가진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번식력이다. 앤은 후계자를 낳지 못하면서 스튜어트 왕조를 그녀의 대에서 끝내게 되었다. 토끼는 자식을 잃으며 후대를 이어가지 못한 앤의 아쉬움과 절망감, 그로 인해 권력의 세습에 실패한 마지막 왕이라는 부담을 기형적인 형태로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토끼는 사라가 권력을 쥐었을 때는 우리에 갇혀 있다. 헌데 그 권력의 중추가 애비게일로 넘어간 순간 우리 밖으로 나와 방 안을 돌아다닌다.
이 순간 영화는 앤과 사라, 앤과 애비게일 사이의 권력 구조를 조명한다. 앤과 사라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라는 게 있었다. 둘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사라는 앤을 조종하는 법을 안다. 두 사람은 왕과 귀족의 관계이지만 같은 추억과 업무를 공유하기에 동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애비게일은 다르다. 그녀의 권력은 아슬아슬하다. 귀족 출신이긴 하지만 몰락귀족 출신이며 엄연히 앤의 하인으로 일하고 있다. 또 하층민의 삶을 경험하면서 몸에 새겨진 저급한 생각과 행동들이 완벽한 유대감을 방해한다.
방 안을 돌아다니는 토끼들의 모습은 고전영화 <이브의 모든 것>의 결말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브는 마고를 이용해 최고의 여배우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른 이브는 자신이 그랬던 거처럼 수많은 신인 여배우들이 자신의 왕좌를 노릴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거울 속 수많은 이브의 모습들은 불완전한 권력과 이를 노리는 세력들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방 안을 돌아다니는 토끼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사라는 권력을 통제하고 지킬 수 있었다. 토끼들을 우리에서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비게일은 그럴 수 없다. 우리를 나온 토끼들은 자유자재로 번식할 수 있다. 그 번식은 곧 권력의 재생산을 의미한다. 애비게일은 이 치고 올라오는 권력들을 사라처럼 통제하기 힘들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또 그녀의 자리로 치고 올라올 것이란 걸 실감한다. 토끼는 앤에게는 자신의 대에서 끊기게 된 왕조와 가정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고통의 의미를 담아내지만 애비게일에게는 치고 올라오는 권력욕의 번식과 불안정한 자신의 현재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개성 강한 감독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선을 더 진하게 만들고 갈등은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암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는 긴장감을 유지할 만큼 줄이고 은유와 상징은 내용 이해에 방해가 안 될 만큼 축소해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번 영화를 통해 씨네필들의 마음은 물론 대중들의 마음마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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