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라이브콘서트 티켓. 콘서트를 한번도 못 갔지만 할인 티켓(앞, 뒤면)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오창균
나를 위로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
테이프에 녹음된 마지막 곡은 처음 들어본 노래였다.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다시, 테이프를 앞으로 돌려서 듣고 또 들었다. 머리털이 쭈뼛서고 가슴을 후벼파는 울림에 온몸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렇게 들국화 1집은 내 생애 처음으로 구입한 카세트테이프와 LP판이 되었다.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한 스피커의 울림으로 노래를 듣고 싶었다. 장기 할부로 턴테이블 전축을 방안에 들여놓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들국화 리더싱어 전인권의 외모를 따라가려고 '마이'라고 불렀던 양복 재킷을 입고, 어깨까지 머리를 길러 파마를 했다.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해 흥이 오르면 어깨동무를 하고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을 목청이 터져라 불렀다.
들국화의 노래는 암울한 청소년 시절의 고달픈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줬고, 앞날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줬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턴테이블에서 들국화의 LP음반이 돌아갔다.
20대 청년이 되어서도 들국화 노래는 가까이 있었다. 그 당시 대학교 앞의 학사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노래방이라는 신문물이 들어오기 전이라서 대학 근처 술집에서는 노래를 틀어주고 부르기도 했었다.
주인 아저씨는 시간대에 맞춰서 틀어줄 카세트 테이프를 알려줬는데, 내가 준비한 들국화의 노래는 나를 위해 수시로 틀었다. 영업이 끝날 무렵에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틀어놓고 청소가 끝날 때까지 무한반복해서 들었다. 어느 날도 마찬가지로 노래를 따라부르며 청소를 하는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아저씨 이 노래만 듣고 갈게요."
젊은 회사원인 그는 근처에서 술 한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씩 주점에 들러 늦은 시간까지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들국화 노래를 들었다. 어느 날은 가게 문을 닫아놓고 함께 술 한 잔 하면서 들국화의 노래와 서로의 힘겨운 삶에 대해서 한탄과 격려를 나누곤 했다.
세월은 흘러도 추억은 남는다
▲지난 1986년, 2집으로 함께 활동했던 밴드 들국화. 왼쪽부터 손진태, 고 주찬권, 전인권, 최성원, 최구희, 고 허성욱.
들국화컴퍼니
결혼을 하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사춘기 아들은 아이유의, 딸은 엑소(EXO)의 팬이 되었다. 딸은 콘서트 입장권을 구하려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콘서트를 여러 번 다녀오기도 했다. 저녁 공연인데 아침부터 부산하게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좋을까, 하다가도 그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잊고 지냈던 들국화의 인연은 이렇게 찾아오기도 했다.
"들국화에서 드럼치는 사람 있잖아. 이름이 (뭐더라.) 이모 아들이 그 사람 딸과 결혼한대."
드러머 주찬권. 다른 일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은 못했지만, 하객으로 온 전인권의 강렬한 인상에 많은 이목이 쏠렸다는 말을 들었다. 몇 년 전 주찬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부고를 들었다. 들국화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꽃이 또 떨어졌다.
2017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집회 인파 속에서 열창하는 무대 위의 전인권을 보았다. 그도 나도 희끗한 흰 머리의 세월을 보내며 같은 마음으로 광장에 나왔다. 지나간 나의 삶 속에서 들국화와 함께했던 노래와 추억이 필름처럼 영사기를 돌아 무대 위에 있었다.
▲2017년 10월 2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 -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가수 전인권이 공연하고 있다.
권우성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공유하기
전인권이 내게 준 '희망',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