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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달리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을 때... 이 영화의 위로법

[리뷰] 영화 <일일시호일> 매일매일 행복하게 사는 법을 말하다

19.01.15 14:51최종업데이트19.01.1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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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일시호일> 포스터 ⓒ 영화사 진진

   
한때 대한민국 20대 대학생들 사이에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아르바이트와 치열한 취업전선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에 위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열풍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 단어는 청춘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위로는 순간일 뿐 결국 돌아가야 될 현실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일시호일>은 이런 청춘들을 위한 영화이다. 한 여인의 24년간의 다도 수업을 통해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이야기한다.
 
20살 여대생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꿈이 없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도 않고 서글서글하거나 똑 부러지는 사회생활하기 좋은 성격도 아니다. 남들은 스펙이니 취업이니 여기저기 알아보고 한 발짝 씩 나아가고 있는데 노리코 본인은 뒤처진 것만 같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사촌 미치코(다베 미카코)와 함께 이웃의 다케타(키키 키린)에게 다도를 배우게 된다. 다케타는 머리로 동작을 익히려는 두 사람에게 말한다. 다도는 머리로 외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거라고.
 
다도(茶道)는 차를 달여 손님에게 권하거나 마실 때의 예법으로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이다. 예법은 하루아침에 익혀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으로 쌓여야 이뤄진다. 노리코에게 세상은 너무나 빠르다. 그녀는 이른 나이에 진로를 정하고 취업을 하는 미치코를 보며 자신은 너무 뒤쳐져 있다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찮은 직업 하나 얻지 못한 자신은 느리고 둔한 존재라 여긴다. 그런 노리코에게 다케타는 말한다. 세상에는 바로 알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오래 보다 보면 깨닫는 일도 있다고 말이다.
  

<일일시호일>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노리코는 자그마한 다도 방 안에서 창문을 통해 정원을 바라본다. 이 조그마한 방에서 24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녀는 여름의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겨울의 추위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남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몸을 편승해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리코는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인생의 아름다움 역시 마찬가지다. 빠르게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디지만 누구보다 찬란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이런 삶의 아름다움을 다도라는 소재를 통해 말한다. 다도는 손님에게 정성스럽게 차를 대접하는 남을 존중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 몸과 정신을 깨끗이 하는 나를 존중하는 모습을 갖춰야 된다. 진정한 다도란 남을 위한 예절보다는 자신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나를 존중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노리코는 취업도, 연애도 제대로 되지 않는 자신을 무능력하다 생각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노리코는 오랜 시간 다도를 배웠으나 우아함을 갖추지 못한다. 그런 노리코에게 다케타는 차를 대접한다. 정성스레 대접받은 차 한 잔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위로를 넘어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다케타의 캐릭터에 있다. 작년 9월, 생을 마감한 명배우 키키 키린이 연기하는 다케타는 '인생은 배우는 것이 아닌 알아가는 것'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전달하며 세상에는 느리게 살아가야 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가르쳐 준다. 차를 내놓는 다도의 과정은 느리고 지루하며 쓸데없는 동작들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이 정성을 다한 차 한 잔이 손님에게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주인에게는 느린 시간의 흐름을 통해 깊은 이해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일일시호일>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이 영화가 말하는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사는 법'은 자신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동갑내기 노리코와 미치코는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둘 다 행복을 알게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바꿔가는 미치코의 삶이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리지만 인생의 깊이를 알아가는 노리코의 삶이 즐거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이런 행복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존중하는 과정을 익혀야 한다.
 
자신에 대한 존중은 이기심을 말하는 게 아니다. 타인을 향한 배려와 이해가 그 출발점이다.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으니 생애 단 한 번이라고 생각해주세요"라는 다케타의 대사처럼 순간은 계절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그 순간 타인의 기억 속에 남을 자신을 의식하고 최선을 다하는 이는 본인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본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일일시호일>은 마치 우리의 일상과 같다. 특별한 일도, 엄청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느려도, 내가 조금 답답해도, 그래서 내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져도 삶에는 오래 보다 보면 깨닫고 알아가는 일도 있으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이 영화는 말해준다. 추운 겨울 마음 한 구석 단단하게 굳은 얼음 같은 근심과 걱정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한 잔의 차와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17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일일시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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