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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숙 가면' 쓴 김희선인 듯... '나인룸' 김해숙 연기에 소름

[TV 리뷰] 김해숙의 열연 돋보인 tvN 새 주말드라마 <나인룸>

18.10.08 14:41최종업데이트18.10.0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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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나인룸>의 두 주인공, 김희선과 김해숙 ⓒ tvN

 
하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tvN 주말드라마 <나인룸>이 베일을 벗었다. 전작인 <미스터 션샤인>의 기세를 이어 받아 5~6%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산뜻하게 출발한 <나인룸>은 고조되어 가는 갈등 구조와 점차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그런데 1~2부를 보고 나니 확실해 진 것이 하나 있다. 이 드라마, '김희선의 드라마'가 아니다.

당초 <나인룸>은 '김희선 드라마'로 홍보됐다. 그도 그럴 것이 당대의 톱스타인 김희선이 주연배우로 나서는데 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컬러> <프로포즈> <미스터Q> <토마토> <안녕, 내사랑> <해바라기> <세상 끝까지> 등으로 1990년대를 '올킬'했고, 최근작 <품위 있는 그녀>로 신드롬을 일으킨 김희선이라면 이러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나인룸>은 '김희선의 드라마'가 아니었다. '김희선 드라마'라는 외피 속에서 작품에 묵직한 무게감을 실어준 이는 다름 아닌 중견배우 김해숙이었다. 그는 화려하고 세련된 을지해이(김희선)와 대비된 초췌하고 나약하면서도 한편으론 강인한 생존력을 보여주는 장화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나인룸>의 몰입감을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놀라운 김해숙의 연기...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드라마 <나인룸>의 한 장면 ⓒ tvN


특히 순간순간 변하는 극 중 인물의 감정을 눈빛과 표정으로 나타내는 그의 모습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첫 회, 자신의 감형을 위해 처연한 모습으로 김희선에게 고개를 숙이다가 모욕적인 말을 듣자마자 무섭게 돌변하여 지팡이를 휘두르고, 그것이 곧 감형을 방해하려는 김희선의 계략임을 알아채며 희망을 '툭' 놓아버리는 허무한 표정으로 교도관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은 압권 중 압권이었다.
 
영혼이 뒤 바뀐 뒤 "나는 장화사가 아니야!"라며 울부짖는 장면, 교도관의 다리를 붙잡고 처절한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 자신의 몸을 뺏어간 김희선을 보고 "장화사!"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장면 등 김해숙은 <나인룸>의 중요 포인트마다 폭발적인 감정 연기로 작품 전반에 서늘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영혼이 바뀌기 전과 후의 말투, 행동, 표정 등이 완벽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영혼이 바뀌기 전 장화사가 초라한 사형수였다면, 영혼이 바뀐 뒤의 장화사는 복수와 분노가 가득한 을지해이 그 자체였다. 김희선의 연기톤을 완벽히 분석하여 캐릭터에 투영시킨 김해숙의 세심한 노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이처럼 <나인룸>은 1~2회를 통해 이 작품이 '김희선만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을 완벽히 설명했다. 또 한편으로는 중견배우 김해숙을 '왜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썼는가'에 대한 물음 역시 완벽히 설명했다. <나인룸>은 사실상 김희선이 앞에서 끌고, 김해숙이 뒤에서 힘 있게 미는 두 여배우의 합작품인 것이다.

'엄마'로 머물지 않아서 좋은 배우, 김해숙
 

드라마 <나인룸>의 한 장면 ⓒ tvN


<나인룸>이 증명했듯 배우 김해숙은 '엄마로 머물지 않아' 좋은 배우다.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들이 주말 드라마의 엄마 역할로 소비될 때, 김해숙은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스스로의 연기폭을 최대한 넓혀왔다. 한계가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열정 덕분에 그는 TV 브라운관 뿐 아니라 충무로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김해숙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멋진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30~40대에 어정쩡한 역할을 맡는 그저 그런 배우가 될 뻔 했던 그는 2000년 KBS 2TV <가을동화>에서 명연기를 보여주며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바야흐로 김해숙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후로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 여자네 집> <부모님 전상서> <인생은 아름다워> <무자식 상팔자> 등에서 현명한 맏며느리이자 전통적인 엄마 역할에 충실했던 동시에 <낭랑 18세>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 클럽> 등에서는 현실적이면서도 귀여운 어머니상을 함께 구현해 내 '국민 엄마' 타이틀을 획득했다.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단 2회분의 출연만으로 전국을 울음바다로 빠뜨린 <장밋빛 인생>에서의 열연은 다시 한 번 배우 김해숙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인기를 끌었던 <진주목걸이>에서의 섬뜩한 악역 연기는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엄마'에 머무르지 않는 끝없는 변신이었다.
 
 

매번 새로운 연기로 감동을 주는 배우, 김해숙 ⓒ KBS

 
영화에서는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우리형> <해바라기> 등에서 국민 엄마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그는 2008년 <무방비도시>의 강만옥 역할을 통해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여인의 비극과 모성을 세밀하게 묘사해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후 그는 <박쥐>의 라여사, <도둑들>의 씹던껌, <암살>의 아네모네, <사도>의 인원왕후, <아가씨>의 사사키 부인, <신과 함께-죄와 벌>의 초강대왕, <허스토리>의 배정길 역에 이르기까지 코믹과 호러, 희극과 비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려함을 자랑하며 충무로가 가장 선호하는 여배우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 완숙한 배우로 성장하는 김해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배우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여느 배우들처럼 좋고 예쁜 역할만 골라하지 않았고, 이름값을 쉽게 팔지도 않았다. 김해숙이 있는 곳은 언제나 카메라가 쉼 없이 돌고, 감독과 스태프들의 땀방울이 마르지 않는 촬영현장이었다. 뜨거운 '삶의 현장'에서 그 역시 뜨겁게 연기한 것이다.
 
엄마로 머물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늙어가는 배우의 내공이 얼마큼 넓고 깊은지를 매번 증명하는, 도전과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배우 김해숙이 <나인룸>을 통해서 또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지 그를 사랑하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기대가 된다.
 
나인룸 김해숙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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