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 키드 라이크 제이크(A Kid Like Jake)>의 한 장면.
Bankside Films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은 쉽지 않아, 특히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후회하는 알렉스에게 주디가 건네는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사람이 사회가 말하는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 그 규범이 아무리 부당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억압 받거나 배제되지 않기를, 그 모습을 지켜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세상에 맞서자니 언제 변화가 찾아올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기도 모르게 부정한다. 평소에는 그렇게 상식적으로 보이던 사람이 자신과 가까운 이가 '소수자'라는 게 드러날 때 일을 그르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상'과 '편견'의 가장 큰 차이는 가능성을 여느냐 닫느냐이다. 존재의 다양성을 상상함으로서 우리는 각양각색의 삶과 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되고 공존의 가능성을 찾는다. 누가 어떤 성적 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그들의 삶을 선입견 없이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면 이는 더 이상 낯설거나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내 주변에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 편견은 그런 가능성을 가로막고 소수자를 문젯거리 혹은 병폐로 규정하며 결과적으로 이들을 배제하고 멸시하게끔 만든다. 그런데 그 대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속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사회는 공동체의 집합이며, 공동체는 여러 관계들이 뭉쳐 만들어진다. 친구·가족·동료 관계 등. 즉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사회적인 문제를 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인의 인간관계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
<어 키드 라이크 제이크>는 내가 본 영화 중에서 이 문제를 가장 구체적이고 밀도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래서 내게 이 영화는 무척 소중하다. 차별과 혐오, 배제가 일견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혐오 집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관람을 강력히 권한다. 편견의 힘이 강한 이유는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생각지 못한 모습으로 불쑥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양성을 상상하는 힘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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