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Theatre Ltd
<킹키 부츠>에서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아래에서부터의 변화다. 공장의 직원들은 공장주인 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찰리와 그들 모두의 성공을 가져온다. 실제 웨스트엔드 공연에서는, 그들이 '평범한' 사람임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사회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다양한 외양의 배우들의 캐스팅했다. 단, 백인 내에서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는, 결국 평범한 백인들의 세계였을까.
이는 백인 중심적 사고를 보여주는 웨스트엔드의 한계이기도 하다. 앙상블 배우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관람한 웨스트엔드 공연에서는, 롤라와 롤라의 언더커버 역할을 맡는 엔젤(롤라와 함께 공연하는 드래그 퀸들) 한 명 외에는 모든 배우가 백인이었다. 물론, '백인 세계'로 대변되는 '평범'하지만 동시에 권력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변화 과정을 부각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인식의 변화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자는 것, 하지만 이는 동시에 시혜적이기도 하다.
세상이 변하는 데에 인식 변화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타자의 존재가 기존 사회의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권력 내부의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킹키 부츠>에서의 서사는 다소 시혜적이고 위험한 태도로 보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찰리가 지닌 캐릭터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킹키 부츠>는 어쨌든 찰리의 '성장기'이다. 가족의 가업으로 물려받은 그는, 사정이 좋지 못한 공장을 다시 살리고 그 공장혹은 공장으로 대변되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 서사의 초점 중 하나는 찰리가 어떻게 훌륭한 '사장'이 되는가이다. <킹키 부츠>의 해피엔딩은 찰리가 자신의 공장에서 내보이는 킹키 부츠로 패션쇼에 참가해 이를 성공적으로 해냈기에 해피엔딩인 셈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를 보여주려 했으나 이런 맥락 하에 <킹키 부츠>가 과연 유쾌한 전복적 상상력을 보여준 윤리적 서사인지 의심이 된다. 시스젠더 헤테로 백인 자본가 남성이 사장으로서 다시 일어서는 데 서사가 달려갔기 때문이다.
찰리가 반드시 소수자성을 지녔어야 했다는 의미도 아니고, 찰리가 몰락해야 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킹키 부츠>가 보여주는 찰리의 성장기는, 소수자들을 주변화하고, 더 나아가 타자화했을 뿐 아니라, 그 권력의 위계에서 나는 차이를 다소 권력자 중심적으로 해석했다.
<킹키 부츠>라는 극은 분명 소수자 롤라까지 주요 인물로 내세우며 분명 인권의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뮤지컬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해피엔딩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저 나름의 대안을 제안하고 있는 극이다. 그런데 결국 그 과정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작품 내 캐릭터 중 가장 권력자에 속하는 찰리의 성공과 맞닿아 있다.
찰리의 재기를 위해 소수자성을 지닌 인물들이 사용 됐다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이야기기도 하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사회의 '찰리'를 따르고 도우면, 저 극 중의 인물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는 어쩌면 다수자의, 기존 사회의 힘을 타자들의 소수자성을 이용하여 더욱 키우겠다는, 그리고 키워야 한다는 욕망의 발현일지 모른다.
소수자를 극에서 다룬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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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드시 모든 극이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하고, 권력의 해체를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모든 서사들이 검열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다른 극도 아니고 <킹키 부츠> 아닌가. '소수자'와 '인간의 소중함'과 같은 주제를 내걸고 있는 극이다. 이는 상당히 정치적인 서사이고, 그래서 정치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킹키 부츠>가 제시한 해결책과 행복한 세계가 과연 정말로 훌륭한 해결책이고 행복한 세계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킹키 부츠>는 좋은 넘버들과 훌륭한 볼거리를 지닌, 유쾌한 데다 감수성까지 갖춘 잘 만든 쇼 뮤지컬이다. 하지만 그 이면들 들여다 봤을 때, <킹키 부츠>를 마냥 좋은 극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극을 '소수자 극', '윤리적인 극'의 상징으로서만 수용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지 않을까. 오히려 <킹키 부츠>를, 그 극 자체보다 비판과 재고의 여지를 두고 바라봤을 때 더 의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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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 해외 관극도 함께하며, 잘 만든 서사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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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장에서 직접 본 <킹키 부츠>, 묘하게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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