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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가 예뻐 보인다면? 자기애 넘치는 여성의 착각

[김유경의 영화만평] 통통한 여성의 자존감 다룬 영화 <아이 필 프리티>

18.06.16 19:38최종업데이트18.06.1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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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필 프리티> 포스터. ⓒ 씨나몬(주)홈초이스


르네(에이미 슈머 분)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스피닝을 한다. 섹시한 몸 만들기가 목표다. 외모가 멋져야 타인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탈의실에서 통성명한 맬로리(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분)가 그저 부러운 이유다. 남성들이 대시할 때 기분이 어떤지 묻기까지 한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는 자기 욕망에 충실하기에 순간순간 풀 죽는 통통녀 르네를 쥐고 흔든다. '몸이 곧 나'가 아님을 알 때까지, 코믹하게.

뒤로 꽈당 넘어졌을 뿐인데, 전에 없이 거울 속 자기가 예뻐 보인다. 남이 볼 땐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으니 '제 눈의 색안경'이다. 그러나 "예뻐져라" 주문 외웠던 르네에게는 고대하던 마법의 '콩깍지'다. 물론 그런 착각은 자유다. 어쨌거나 예쁘다 여기니까 자신감이 붙는다. 르네는 낯선 에단(로리 스코벨 분)에게 낚싯밥을 던져 데이트를 시작하고, 로망이었던 본사 입성을 위해 안내데스크 직원 자리에 신청서를 낸다.

머리를 다친 후 외모 콤플렉스가 사라졌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 스틸 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머리를 다친 후 사람이 달라진다는 영화적 발상이 재치 있다. 뇌 기능 이상으로 생긴 신경대사물질의 흐름 변화가 르네의 콩깍지인 셈이다. 정상인의 '마음먹기 나름' 버전으로 어쩌지 못하는 외모 콤플렉스를 아예 비정상인의 콩깍지 버전으로 건드리는 연출이다. 정신 차리게 하려면 콩깍지를 씌웠다 벗기는 충격요법도 쓸 만하다는 윙크다. <아이 필 프리티>가 뼈 있는 로맨틱 코미디로 다가오는 이유다.

한바탕 콩깍지 신바람을 일으키며 좌충우돌하는 '르네다움'은 사고 전에도 언뜻언뜻 보이던 잠재 성향들이다. 한결같은 패션 센스처럼. 그러니 예쁘다는 조건이 붙은 르네의 콩깍지 자신감이 자존감은 아니라는 암시다. 자존감은 자기를 무조건으로 사랑할 때야 지닐 수 있기에 그렇다. 르네의 두 친구처럼.

SNS에 올린 전신사진 조회 수가 제로일 정도로 두 친구의 외모는 별 볼 일 없다. 하지만 둘은 그런 외부 반응에 기죽지 않는다. 사는 방식은 사람 나름대로 다르다 여기니까. 단체 미팅에서 섹시함 어필에만 신경 쓰는 르네가 불편해서 이후 뜨악한 사이가 된다. <아이 필 프리티>에서 르네의 자존감 회복이 우정의 되살림과 궤를 같이하는 연유다.

데이트를 시작했지만, 에단은 르네가 무섭다. 엉뚱해서 재밌긴 한데, 대놓고 쏟아내는 자신감이 낯설고 벅차다. 그러나 르네의 돌발 행동들에서 섹시함을 느낀 이후부터 에단에게 르네는 특별하다. 세상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르네가 사랑스럽다. 에단은 물론이고, 대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서다. 자존감에 눈뜬 에단의 사랑이 <아이 필 프리티>의 로코를 완성한다.

콩깍지 벗겨진 주인공,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영화 <아이 필 프리티> 스틸 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르네에게 반한 사람은 에단만이 아니다. 코스메틱 회사 '릴리 르클레어' CEO인 에이버리 클레어(미셸 윌리엄스 분)는 자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르네가 우러러보던 셀럽이 르네를 걸 크러쉬로 바라보는 것이다. 창시자인 릴리 할머니(로렌 허트 분)도, 클레어의 남동생 그랜트(톰 호퍼 분)도 르네에게 집중한다.

창업주 가족과 함께한 출장지 호텔에서 르네의 콩깍지가 벗겨진다. 샤워부스에서 미끌어진 것이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르네는 집으로 도망쳐 두문불출한다. 평소 당당한 이미지를 구축해 <아이 필 프리티>의 콩깍지 신바람 연기가 자연스러운 스탠드업 코미디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는 절망하며 널브러진 르네에게도 제 옷 걸치듯 빙의한다.

르네가 일과 사랑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밴 '나다움' 때문이다. 예뻐져라 외치는 열망과 집중의 에너지도 그 중 하나다. 지저분한 메이슨(에이드리언 마르티네즈 분)과 단둘이 일하는 차이나타운의 건물 지하에서 농땡이와 거리 먼 오피스 걸의 모습을 고집하는 자기 관리도 르네다움이다. 두 친구가 인정한 유머러스함도 그것이다.

누구에게나 '나다움'은 르네처럼 버릇이다. 버릇이 중요한 건 위기의 순간에 절로 튀어나와서다. 콩깍지가 벗겨져 절망에 빠진 르네를 뛰쳐나왔던 발표 무대로 떼민 것이 '그냥 르네'였듯이. 우여곡절을 딛고 "나는 그냥 나"임을 역설하는 어여쁜 르네에게 공감한다. 그렇게 <아이 필 프리티>는 내가 물질(외모)이 아닌 가변성의 인격체임을 콕 짚어준다. 정해진 바 없이 되어가는 존재란 얼마나 매혹적인가.   

아이 필 프리티 에이미 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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