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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못이 아니야" 여성 마음 대변한 '라이브' 속 대사들

[TV 리뷰]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 세밀하게 그려낸 <라이브>

18.05.12 14:42최종업데이트18.05.1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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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18회로 막을 내린 드라마 tvN <라이브>는 우리네 일상을 지키기 위해 매일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지구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 노희경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은 이에 그치지 않고 경찰 지도부와 사회 권력층, 언론, 때로는 시민들로 인해 발생하는 불합리한 순간들을 포착하면서 이들이 겪는 고충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등장인물들도 한 명 한 명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사명감 하나로 일하는 '염상수'와 그 사명감을 누가 가져갔냐며 절규하던 '오양촌', 조직에서 팽당한 '안장미', 투잡 뛰는 '강남일'과 한평생을 경찰로 일하다 은퇴한 '이삼보'까지. 그중 <라이브>를 보는 내내, 또래 여성으로서 가장 공감했던 인물은 정유미가 연기한 '한정오'였다.

<라이브>에서 홍일지구대 시보순경을 맡은 '한정오' ⓒ tvN


한정오는 라이브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 중 하나로, 로맨스물이 아닌 장르물에서 누군가의 보조 역할을 넘어 '자기 서사'를 가진 여성 캐릭터다. 남성 중심의 경찰 조직에서 직급도 가장 낮은 시보이지만, 부당한 일은 그냥 넘기지 않고 할 말은 꼭 하고야 만다. 그래서인지 여성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대변하는 한정오의 대사는 스쳐 지나는 장면이라도 그냥 흘려지지 않는다.

"결혼계획은?", 여성 취준생이 겪는 가혹한 질문

라이브 첫 회에서 취준생 한정오는 취업박람회에 참석해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닌다. '지방대' 출신 '여성'인 한정오에게 기껏 돌아간 질문은 결혼 계획이 있냐는 것이고, 이 살벌한 취업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 생각은 없다"며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도 자신보다 스펙이 낮은 선배가 '남자'라는 이유로 합격해 '군대에서 키운 인내심'을 운운할 때, 한정오는 말한다. 

"내가 진짜 열 받는 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과 고용권을 가진 대다수의 수구세력인 남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부 쪼잔하고 불합리한 경험을 통해서 얻은 편협한 편견을 가지고 '여자는 조직을 모른다', '인내심이 없다' 막말을 해대며 내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초치고 있다는 거야."

한정오의 이 대사는 채용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한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8%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라는 사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녀 채용 비율을 애초에 4:1로 설정했던 하나은행 채용비리 사례와 같이 여성들의 취업 시장 진입을 막는 구조적인 성차별이 만연하다. <라이브>는 이 장면을 통해 '여성고용정책은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논리를 가볍게 박살 낸다.

드라마 <라이브> 중 한 장면 ⓒ tvN


"저도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에요"

결국 한정오는 기업 취직을 포기하고, 그나마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공무원 시험을 거쳐 경찰이 된다. 이 바늘 같은 취업문을 뚫고 들어가더라도, 여성이 직장 내에서 마주하게 되는 상황 또한 녹록지 않다.

주취자들의 싸움을 말리던 중 한정오의 테이저건 발사 문제로 감찰 조사를 받게 되자 그의 사수는 "너는 여자라 경찰 일 관두면 너 하나 직장 잃는 거겠지만 나는 애가 있고, 아내가 있고, 한 집안의 가장"이라며 화를 냈다.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두 식구를 책임지는 가장인 한정오는 이를 되받아치며 말한다.

"저도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에요. 내 인생은 물론, 공황장애를 앓는 아픈 엄마까지 책임져야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가장은 언제나 남성으로 설정되고, 여성들은 종종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받거나, 승진 기회에서 쉽게 배제당한다. 하지만 여성 또한 자신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며, 그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차별받아서도 안 된다.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위로 "그 어떤 것도 니 잘못이 아니야"

드라마 <라이브> 중 한 장면 ⓒ tvN


<라이브>에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불법 성매매 등 여성을 향한 다양한 유형의 젠더폭력 사례가 등장한다.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자기 탓인 양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자신보다 되려 주변의 시선을 더 걱정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실제 피해자들과 다르지 않다.

"왜 좀 더 저항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힘이 약한가. 왜 처음부터 강해서 자신을, 동생을, 지키지 못했나. 내가 12년 전 그때 범인보다 그 장소를 지나갔던 나를 미워했던 것처럼, 너 역시 사는 내내 수만 가지 자책할 거리가 떠오르겠지만, 분명하게 알아야 돼.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범인의 잘못이지."

자신 역시 성폭력 피해자인 한정오가 또 다른 어린 피해자에게 건네는 이 말은 미투 운동으로 용기를 낸, 우리 사회의 많은 피해 당사자들을 향한 위로이기도 하다. <라이브>는 한정오의 입을 통해 너무 당연하지만, 그래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여성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나아가 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을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낸 드라마가 있을까. 우리가 <라이브>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라이브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한정오'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유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라이브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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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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