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에이스' 지소연의 침묵, 여자 대표팀에는 더 이득이었다

[축구] 지소연, 본래 공격수 아닌 미드필더… 팀 플레이에 집중

18.04.19 10:38최종업데이트18.04.19 10:44
원고료로 응원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6일(한국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대비 대표팀 훈련을 마친 뒤 인터뷰하고 있다. 2018.4.6 [대한축구협회 제공=연합뉴스] ⓒ 대한축구협회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8일부터 요르단에서 열린 '2018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5위를 기록하며 '2019 FIFA 여자 월드컵'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1승 2무를 기록했음에도 조 3위에 그치며 4강 진출에 실패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첫 두 경기에서 강호 호주와 일본을 만나 모두 0-0 무승부를 거둔 대한민국은 전력이 한 수 아래인 베트남과 필리핀을 상대로 각각 4-0, 5-0 대승을 거뒀다. 이민아와 조소현이 3골을 터뜨렸고, 이금민, 장슬기, 임선주가 1골씩을 보탰다.

'역대 최강 전력' 지소연, 이번 대회에서는

지소연(잉글랜드 첼시 레이디스)은 이번 대회 4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했다. 호주전과 일본전은 풀타임을 뛰었고 베트남과 필리핀전에서도 83분과 73분을 뛰었다. 그러나 득점은 한 차례도 없었다. A매치 103경기 45골로 현역 중 최다이자 은퇴 선수를 포함해서도 차범근(58골), 황선홍(50골)에 이어 역대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이기에 이번 대회 성적은 다소 의아하다.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대표팀의 공격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소연의 컨디션이나 기량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비록 득점은 없었지만 지소연은 대회 기간 줄곧 부동의 에이스로서 대표팀을 이끌었다. 단지 지소연 본인의 역할 변화와 전술상의 이유로 득점할 기회와 거리가 멀어진 것 뿐이다. 우선 우위를 점하고도 아쉽게 무승부에 그쳤던 일본전을 살펴보자.

2010 FIFA U-20 여자 월드컵 실버슈(8골)와 현역 A매치 최다골 등의 타이틀 때문에 공격수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지소연의 포지션은 미드필더다. 지소연 본인도 인터뷰에서 수차례 이를 강조한 바 있다. 소속팀 첼시 레이디스에서도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대표팀의 공격력 탓에 지금껏 공격수와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뛰어야 했던 지소연은 2015 동아시안컵을 기점으로 이민아가 급부상하면서 비로소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4-1-4-1 포메이션에서 이민아와 나란히 2선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히트맵에서 보이듯 지소연의 자리는 조소현의 옆자리인 3선에 가까웠다. 이날 지소연은 아시아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일본을 맞아 중원에서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패스 성공률은 73.4%로 아주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2개의 태클과 인터셉트를 비롯해 기회창출도 2개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이처럼 지소연이 부담을 내려놓고 2선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게 된 것은 이민아와 이금민이라는 든든한 공격자원들의 등장 덕이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열린 '2017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 지소연이 빠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이민아는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3골을 터뜨려 등번호 7번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 차세대 공격수 이금민 역시 최전방과 측면을 넘나들며 월드컵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신성 한채린과 베테랑 전가을, 정설빈도 얼마든지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선수다.

물론 지소연이 직접 골을 노릴 때에 비해서는 아쉽다. 일본전에서는 끝내 상대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호주전에서는 아예 한 개의 슈팅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소연이 내려옴으로서 대표팀이 얻는 이점도 확실하다. 이는 지소연과 함께 대표팀의 역삼각형 허리를 책임지는 이민아, 조소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민아, 조소현, 지소연... 여자 축구대표팀의 기둥들

▲ '베트남전 멀티골' 이민아 이민아가 14일(한국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3차전 베트남과 경기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2018.4.14 [대한축구협회 제공=연합뉴스] ⓒ 대한축구협회


이민아와 조소현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선수다. 먼저 이민아는 탁월한 축구 센스를 갖췄다. 다만 피지컬이 뛰어난 상대를 만나면 고전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 열린 미국과의 평가전에서는 전반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유니폼이 녹색으로 물들 정도로 힘든 경기를 펼쳤다. 아시안컵 4경기에서 이민아의 볼 경합 성공률은 31%(호주), 11%(일본), 50%(베트남), 35%(필리핀)였다. 공격 지역에서 볼을 따내거나 지키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지소연의 볼 경합 성공률은 36%(호주), 44%(일본), 70%(베트남), 88%(필리핀)였다. 미국과의 평가전에서도 두 명, 세 명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끝끝애 볼을 지켜내고 전개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거친 유럽 무대에서 4년째 주전으로 뛰며 잔뼈가 굵은 지소연이다. 아시안컵에서 경기당 1개의 태클과 0.5개의 슈팅 블록, 1.5개의 인터셉트 등 수비적인 공헌도도 높다.

'캡틴' 조소현은 이민아와는 반대 유형이다. 조소현의 최대 장점은 활동량과 투지다. '조투소'라는 별명처럼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상대를 괴롭힌다.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모두 소화하는 유틸리티 능력도 갖췄다. 호주와의 1차전에서는 풀백으로 선발 출장해 상대의 측면 공격을 봉쇄했다. 경기당 2.5개의 태클, 1.5개의 클리어링, 0.5개의 슈팅 블록과 2.3개의 인터셉트라는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단점은 발밑이다. 체력과 수비력, A매치 112경기 20골로 수준급의 공격 가담 능력까지 갖췄지만 상대적으로 투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전 소속팀이었던 인천현대제철에서도 빌드업의 중심은 그가 아닌 이세은과 이영주였다. 지소연의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공급은 이러한 조소현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지소연은 이번 대회에서 총 9번의 기회 창출을 기록했고 그 가운데 3개가 득점으로 이어졌다.

데이터에서 볼 수 있듯이 미드필더 지소연은 대표팀이 보다 안정감 있는 경기를 펼칠 수 있는 힘이 된다. 윤덕여 감독의 지휘 아래 역대 최고의 FIFA 랭킹을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은 도전자의 입장이다. 아시아를 벗어나 전 세계의 강호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월드컵이라면 대한민국은 더더욱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지 않는 경기'를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 '미드필더' 지소연과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지 내년 월드컵을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여자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