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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한테 혼난 KBS 기자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인터뷰] KBS 사내 반성 프로그램 <끝까지 깐다> 제작한 김범수-이승문 KBS 피디

18.04.11 16:52최종업데이트18.04.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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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가감 없는 쓴소리에 KBS 기자와 피디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난 10일 방송한 KBS <혁신 프로젝트-끝까지 깐다>(아래 <끝까지 깐다>)에서 선보인 장면이다. <끝까지 깐다>는 고대영 전 KBS 사장이 해임된 뒤 공영방송 KBS 정상화의 일환으로 제작된 특별 프로그램. 스튜디오에 다른 성별과 연령대인 시청자들이 모여 지난 몇 년 동안 망가졌던 KBS 뉴스와 교양,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까버린다.'

재미있는 지점은 문제시됐던 리포트를 제작했던 기자들과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피디들이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반성하는 장면 또한 그대로 방송됐다는 것이다.기자와 피디들은 "시청자들이 이렇게까지 KBS를 들여다보고 있을 줄 몰랐다"면서 "앞으로 KBS가 정말 변해야 한다"고 다짐의 목소리를 전했다.

<끝까지 깐다>가 방송된 그 다음 날인 11일 오전 여의도 KBS에서 김범수 제작 피디와 이승문 피디를 만나 방송 제작 과정에 대해 묻고 들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 <끝까지 깐다>의 한 장면. 시청자들이 직접 KBS 스튜디오에 나와 KBS에서 방송된 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 KBS


"시청자의 시선에서 KBS를 보고 싶었다"

- <끝까지 깐다>는 KBS가 KBS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떻게 기획된 건가?
김범수 피디 "142일간의 파업이 끝났고 이제 KBS가 변화해야 할 때다. 이런 때 KBS의 변화를 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내부에서는 '반성 프로그램'이라 부르는데 MBC의 경우 반성 프로그램이 <피디수첩>과 < MBC 스페셜>, 대담 프로그램 이렇게 총 세 개가 나갔다. 시청자 분들에게 그동안 KBS 파업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고 새롭게 나아가겠다는 걸 약속하는 프로그램이 KBS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봤다. 파업이 끝나갈 때쯤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 시청자들이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KBS를 비판하는 형식이 인상적이었는데.
김범수 피디 "비판의 주체를 시청자로 하자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합의가 됐고 그런 형태라면 토크쇼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최대한 시청자가 모여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했다."

이승문 피디 "시청자들에게 직접 적나라한 이야기를 듣자고 말했는데 정말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프로그램 기획부터 그 결과물까지 KBS가 시청자들과 너무 오랫동안 유리돼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 <끝까지 깐다>의 한 장면. 시청자들이 직접 KBS 스튜디오에 나와 KBS에서 방송된 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했고 이를 영상으로 KBS 기자와 피디들이 지켜보고 있다. ⓒ KBS


고개를 숙인 KBS 송명훈 기자. 해당 기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 홍보 보도 거부로 인해 KBS 사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 KBS


- 시청자들의 비판을 뒤에서 지켜보는 KBS 기자와 피디들이 있었다.
이승문 피디 "기꺼이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자와 피디 분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셨다. 특히 기자들의 경우 그동안 실제 문제가 된 리포트를 하거나 그와 연관이 된 분들을 중심으로 섭외했다.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시청자들에게 설명한다는 취지에서였는데 그런 말을 하면 변명이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 시청자들이 나오는 (스튜디오) 영상을 같이 보겠다고 해주셨고 그 내용에 대해 진지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여 주셨다. 우리 내부에서는 많이 해왔던 이야기들이지만 시청자의 육성으로 직접 들으니 좀 더 충격이 컸다."

김범수 피디 "사실 영상에 나오신 분들은 지난 10년 동안 파업에도 앞장 서신 분들이다. 그래서 반성하라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출연하신다는 점에서 죄송스러운 부분이 있다. 나름대로 10년 동안 노력했던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결국 앞으로 좋은 KBS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실 거고 이 사람들 또한 반성의 흐름에 같이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출연을 (권유했다)."

- 시청자들이 쓴소리를 한 스튜디오 녹화분을 KBS 건물 내부에 틀고 구성원들의 반응을 카메라로 찍기도 했는데 KBS 내부 반응이 어땠나?
김범수 피디 "아마 로비 등에 그걸 틀어놓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다. 간부를 맡고 계신 분들이라든지. 하지만 저희 팀이 독립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저희 내부로 그런 의견이 전달된 적은 없다. 그런 점에서도 KBS가 조금씩 자율성을 회복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 <끝까지 깐다>의 한 장면. 시청자들의 '쓴소리'를 담은 영상을 KBS 건물 내부에 틀어 KBS 내부 구성원들이 보게끔 만들었다. ⓒ KBS


- 뉴스 보도만이 아니라 예능이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까지 '끝까지 까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어떤 의도에서였나?
김범수 피디 "KBS 프로그램 전체를 평가한다는 건 사실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고 무서운 일이다. 이것 또한 개인적인 판단인데 정치적인 외압이 옥죄어 오면서 예전만큼 치열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고 관습적으로 만든 부분들이 있다고 봤다. 프로그램의 가치보다 안락을 추구한 거다. 프로그램에 대해 치열하게 다가서려는 순간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회사와의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 최대한 피하려는 방어 기제 같은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진부하고 고루하고 변화가 없어 보이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건 내 생각이고 패널로 나온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달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시청자들 역시 KBS가 혁신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느끼고 계셨던 것 같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 <끝까지 깐다>의 한 장면. 시청자들이 직접 KBS 스튜디오에 나와 KBS에서 방송된 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KBS 프로그램이 재미 없다며 즐겨 시청하지 않는 '실제' 시청자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 KBS


- 이러한 '반성'을 일회성 프로그램으로 끝낼 생각인가?
김범수 피디 "일단 <끝까지 깐다>는 1회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다만 1, 2년 후에 같은 패널들을 모시고 KBS를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옴부즈맨 프로그램이 존재하니 매주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년 동안 KBS는 수많은 변화를 시도할 거고 실패할 거고 어쩌면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없다면 없는 대로 있다면 있는 대로 다시 모여 이야기를 해보는 것 역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준비했던 것 중에 프로그램에 담지 못한 부분이 있나?
이승문 피디 "뉴스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 기사 작성에서 정치적 외압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보여드리고 싶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 때 KBS가 태블릿PC 진위 공방에 몰두하는 보도를 했는데 당시 기자가 썼던 멘트가 데스킹을 거치면서 최초에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왜곡하고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뉴스가 이렇게 망가진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걸 시각적으로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예컨대 조사를 살짝 바꾼다든가 단어를 하나 바꾼다든가 하는 디테일들. 물대포를 물줄기로 바꾼 것. 디테일을 바꿔서 메시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 <끝까지 깐다>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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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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