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주인공 한상기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백방으로 호소하지만 늘 벽에 부딪힌다.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소중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삼성이라는 공룡과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하는 근본 이유는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아버지의 애끓는 호소를 통해 이 같은 허점을 드러낸다. 법정에 선 아버지 한상구는 입증책임을 따지는 재판부를 향해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로 이렇게 호소한다.
"저는 무식하고 못 배워서, 이 재판정에서 무슨 얘길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제 딸내미가 일하던 공장에선, 그냥 암도 아니고 백혈병 환자들이 참 많이 생겼어요. 택시 운전을 하다 보면요, 술 취해서 돈 안 내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그 사람들 쫓아가서 잡으면 뭐이라 하는지 알아요? 돈 냈다고, 아저씨가 사기 치는 거 아니냐고 잡아떼요. 그러면서 돈 안 낸 증거를 내 놓으라는 거예요. 회사나 공단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산재 신청을 하면요, 우리한테 그 증거를 내놓으래요. 영업 비밀이라고 자료도 내놓지 않고, 작업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우리한테 증거를 내 놓으라는 법이 세상에 우데 있어요? 근데요, 우리한테 증거 있어요. 여기, 여기, 또 여기, 또 저기, 여기 병든 노동자들의 몸, 가족 잃은 사람들. 이게 우리의 증거예요. 이보다 확실한 증거가 또 있을까요?"이건희 회장이 성매매 스캔들을 벌이는 사이, 그리고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부도덕한 권력과 거래를 하던 사이 삼성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조건에 내몰리다 하나둘 목숨을 잃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삼성과 싸우려 해도 언론과 법이 삼성의 방패막이로 나서니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다. 황상기씨는 이 부회장 판결 직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름도 형식적인 판사, 국민 세금으로 월급받으면서 국민 뜻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 지금까지 받은 월급 도로 내놔라, 국민의 명령이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삼성 입사를 꿈꾸는 젊은이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더욱 삼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삼성이 어긋난 방향으로 나가면 우리나라 전체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준 기회를 놓친 적이 있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재용 부회장 수사는 삼성을 바로 잡을 두 번째 기회였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의 잘못된 행실이 바로잡히나 했다. 그러나 정형식 판사의 집행유예 판결로 이 같은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낙담하기엔 이르다.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어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삼성을 사회의 투명 감시망 아래에 놓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성추문이나, 뇌물 공여 같은 범죄행각은 어느 시점에서 되풀이된다.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부조리 역시 막지 못한다.
기회는 한 번 놓치면 다시 잡기 힘들다. 이번에 또 다시 놓치면 언제 기회가 올지 장담 못한다. 무엇보다 삼성을 바로 잡는 일은 박근혜 전 정권을 몰아낸 촛불이 이뤄내야 할 '또 하나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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