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기장 앞 러시아 국기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적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 국가 선수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한 소식이 알려진 지난 2017년 12월 7일 오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주경기장 앞에 설치된 참가국 국기봉에서 러시아 국기(왼쪽)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한국의 러시아 응원단 조직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는 최근 국가 차원에서 도핑을 주도한 것이 폭로됐고, 이로 인해 대표팀 자격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스포츠에서 공정성을 훼손한 행동인 만큼 큰 범죄를 일으킨 것이다. 아직까지도 세계반도핑기구(WADA)를 비롯한 주요 국제 단체에서는 러시아의 전면 출전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 직전 동계올림픽이었던 소치 대회에서 피해를 입은 일도 있다. 당시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에서 김연아가 석연찮은 판정으로 결국 올림픽 2연패를 놓치고 말았다. 당시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부인, 과거 올림픽에서 징계 처분을 받은 사람 등이 심판으로 참여한 것 자체부터가 문제였던 인물들이 대거 여자싱글에 배정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결국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마지막 무대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오히려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자국 선수가 피해를 본 것을 제쳐두고라도 집단 도핑 문제에 대한 적절성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정정당당하게 임해야 할 대회에서 여러 국가와 선수들에게 피해를 준 셈인데, 이런 국가를 위해 개최국 차원에서 응원단을 꾸리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종목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자메이카나 동계종목 약소국, 또는 한국 선수를 위한 응원단 등을 꾸린다고 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국가를 위해 응원단을 구성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지원도 없다가... '정치 이벤트' 욕심 내는 정치계한국에서 동계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인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지원이나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평창 대회를 유치하고 난 이후 일부에서는 선수들의 훈련 환경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피겨여왕' 김연아(28)가 과거 선수시절 국내에서 여러 링크장을 돌며 '메뚜기 훈련'을 해온 사실은 너무나 유명해진 일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금까지도 국내 어디에도 피겨 전용링크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선수들은 밤늦게나 새벽 대관 시간을 이용해 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컬링은 최근 연맹의 부실행정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 컬링센터가 부실공사 여파로 선수들이 제때 훈련을 하지 못한 데 이어,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대회를 개최해 실전 감각을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연맹 행정이 마비되면서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 못한 채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해야만 하게 됐다. 최근 스켈레톤 윤성빈(24·강원도청)이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썰매계는 평창 경기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도로 아스팔트 위에서 주행훈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지난 6년여 간 동계스포츠와 관련한 현장만을 취재해오며 여러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링크 사정이 좋지 못해 한 곳에서 여러 명의 선수가 훈련하다 보니 선수는 물론 코치와도 부딪혀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포츠 축제가 코 앞으로 다가오니 싸늘하고 차갑기만 했던 은반과 설원 위에 정치계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하지만 그 손길은 선수단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단일팀과 같은 이벤트 성사시키기 위한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과연 어느 선수와 지도자가 이 같은 손길을 반가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한국 선수단을 위한 지원은 부족한 상황에서 대회 흥행을 위해 러시아 선수를 위한 응원단을 만들겠다고 하는 정치계의 행동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협의도 없이 이뤄진 남북단일팀이 얼마나 환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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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