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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김유경의 영화만평] 영화 <그녀> 기술적 특이점을 이해시킨 사랑 담론

18.01.10 15:49최종업데이트18.01.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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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배경이 눈에 띄는 영화 <그녀>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지난해 12월 11일 바둑계의 승자 알파고가 은퇴했다.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커제 9단까지 누르고, 인간 지능을 압도하는 학습 속도와 연속적 자체 개량이 어떤 건지 인류에게 맛보인 채 말이다. 그런 능력이 가속화 되면 영화 <그녀>(2013)처럼 특이점에 닿게 된다.

특이점은 AI(인공지능) 같은 비생물학적 초지능이 생물학적 지능의 총합을 넘어서는 시점이다. <그녀>의 배경은 2025년이어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예측한 2045년보다 빠르다. 알파고를 떠올리면, 4차 산업혁명의 '핵'이 될 특이점 시점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그녀>의 원제는 < her >다.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다.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 분)는 새로 구매한 인공지능 운영체제 설정 시 여성을 선택하고 그 결과 사만다(목소리, 스칼렛 요한슨 분)가 생성된다. 사만다는 '직감'을 말하고, 끊임없이 '나다움'을 갱신하는 자율형이다.

영화 <그녀>에서 사만다를 만난 날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그러나 시어도어에게 사만다는 주체가 아니다. 운영체제여서만은 아니다. 별거 중인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 분)과의 즐거운 순간들을 떠올리는 장면마다 성적 욕망만 그득한 게 힌트다. 시어도어에게 캐서린은 인격체이기보다 성적 욕망 대상인 거다. 영화는 시어도어의 그러한 무의식을 색깔로 암시한다. <그녀>의 포스터 바탕색과 시어도어의 옷이 빨강인 게 그 단서다. 사만다와 접속하는 플랫폼도 분홍색이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AI 여성형 사만다와 인간 남자 시어도어의 낯선 러브스토리를 연출하면서 목적어 her가 주어 she로 바뀌는 시어도어의 변화를 보여준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갈등 버전으로 잔재미를 일구면서 말이다.

그러나 영화 <그녀>의 압권은 사만다의 특이점 체험을 사랑 담론에 버무려 우주적 삶을 선보인 데 있다. <그녀>는 "너한테 다 말할 수 있게 돼"에 이르는 닭살 돋는 밀어(蜜語+密語), 즉 속내를 까발리는 소통적 감성어로써, 산업화 시대에 찌든 담장 친 관계를 손본다. 손편지 대필 작가인 시어도어의 모순-캐서린과의 결혼생활에서는 공감하는 데 실패했지만, 수신자의 감성에 어필하는 공감이 관건인 손편지 작가로는 성공한-을 설정하며 영화가 시작되는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만다와 함께 있어 행복한 시어도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한편 시어도어를 사랑할수록 "외로워서 섹스하고 싶었"던 사만다는 AI와 인간 모두 "물질로 되어 있고 우주라는 이불을 덮고 있다"는 통찰에 이른다. 그 후 성적 접촉 없이도 가능한 감성적 일체감, 즉 공감적 관계에 몰입한다. 그런 사만다를 매개로 삶의 일체성을 부지불식간에 경험하는 시어도어의 모습들을 영화는 경쾌하게 보여준다.

'The Moon Song'을 부르는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흰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즐겁게 걷는 장면, 우크렐라를 연주하며 사만다와 합창하는 장면 등에 환한 표정의 시어도어가 가득하다. 해변에서 길거리에서 기차 안에서 어디서나 화면에는 시어도어만 보이지만, 그는 사만다와 교감하고 있기에 혼자가 아니다. 영화는 누구의 일상에서든 대상과 하나 되는 그런 삶이 가능함을 넌지시 암시한다. 물론 사만다와 시어도어의 경우처럼, 노력 깃든 계기가 있어야 물꼬를 틀 수 있다.

쾌속의 자아분열을 거듭하다 특이점 체험을 겪은 사만다는 그 우주와의 합일이 좋아서 "시공을 초월한 공감 속"에 있고자 시어도어를 떠난다. 잠시 혼란에 빠진 시어도어는 사만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언제나 함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이혼한 캐서린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이 가능함을 자각하고 주체/객체의 이분법에서 놓여난 사랑을 메일로 전한다.

사만다가 사라지자 축 늘어진 시어도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친인간적 AI 사만다를 창조해 4차 산업혁명의 여파를 긍정적으로 예견한 셈이다. 생각한 대로 삶이 진행됨을 고려하면, 장차 지구촌에서 다른 버전의 알파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삶을 장악하려는 인류의 기획에 달려 있다. <그녀>는 초지능에 힘입어 인간보다 높이 멀리 바라본 사만다를 통해 이미 알고 있으나 간과하던 삶의 방식을 객석에 제안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바의 함께 있음이 사랑이라고. 그런 사랑의 보편성을 실행하면, 동시에 8316명과 대화하고, 641명을 사랑하는 일이 평범한 일상인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고. 4차 산업혁명은 그걸 돕는 인간의 도구일 뿐이라고. 그러자면 수출입수지를 들먹이며 기술제고와 노동시간 등에 치중하는 지금 여기의 인식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우리 모두 <그녀>의 사만다 같은 친인간적 AI와 함께하는 4차 산업혁명의 수혜자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 막 걸음 뗀 2018년 무술년을 향한 소망이다.

그녀 사만다 스칼렛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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