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87> 에서 배우 이희준은 박종철 열사 사망 원인을 보도한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로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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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진실을 세상에 처음 알리는 데 공헌한 금창태씨는 승승장구하며 1999년 <중앙일보> 사장직을 맡았고, 2001년 퇴사해 <시사저널> 사장직을 맡는다. 당시 영향력을 키워가던 <시사저널>이었지만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의 비리를 파헤친 일선 기자들에게 기사를 쓰지 말라는 압력을 가하다가 결국 임의로 기사를 삭제시킨다. 이로 인해 소속 기자들이 전원 파업했고, 회사를 뛰쳐나와 <시사인>을 창간하는 이른 바 '시사저널사태'가 발생했다.
특종 기사를 쓴 신성호 기자는 여러 부서를 거치다가 2000년 논설위원을 맡았다. 이후 전국부, 사건사회부 부장, 사회담당 부국장 직을 맡았고 2006년엔 수석논설위원을 지냈다. 2007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내면서 교계에 발을 들였고,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홍보특보로 일했다.
<중앙일보>의 최초 보도 이후 <동아일보>는 1987년 1월 16일과 17일에 거쳐 당국의 발표와 달리 박종철이 고문에 의해 사망했으며, 그것이 물고문이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 보도로 전국에 항쟁의 불씨가 퍼지게 된다. 이 기사의 주역 중 한 명이 바로 영화에서 이희준이 연기한 윤상삼 기자다.
해당 보도 이후에도 윤상삼 기자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분투했다. 1996년부터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했는데 3년 뒤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향년 42세. 당시 그는 취재뿐만 아니라 회사 간부 및 외부 인원의 의전을 맡는 등 업무 이외 일로 잦은 음주를 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윤 기자를 순직 처리하지 않고 회사장이 아닌 편집국장으로 치러 강하게 비판받기도 했다.
유족은 이후 소송을 제기했고, 2002년 4월 서울행정법원은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관계가 있다'며 산재를 인정,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고 윤상삼 기자의 부인 엄영숙씨는 "(이 일이) 남편의 명예회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소송에서 이긴다면) 사람과 자신의 직업을 특별히 좋아한 남편 윤상삼 기자가 인정받게 되는 일"이라고 당시 소송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한편 <동아일보>는 영화 개봉 직후 회사 SNS를 통해 '< 1987 >은 현재의 <동아일보> 기자들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수행한다'는 문구와 함께 기사를 인용하며 홍보성 글을 올렸다. 하지만 실제로 <동아일보>는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기사를 금지시키고 권력의 언론 탄압에서 취재하고 기사 쓸 자유를 달라'며 이른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요구하던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고시키며 '동아투위'를 촉발시킨 곳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이 문제에 대해 <동아일보>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당시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과 <조선일보> 해직 기자들이 주축이 돼 1988년 5월 <한겨레신문>(현재의 <한겨레>)을 창간한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 김정남은?영화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김정남은 실제로도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1942년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6.3 항쟁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옥살이를 했고,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추앙받으며 동시에 1987년 6월 항쟁 직후까지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은둔생활을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 임기 때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비서관 직을 맡기도 했다.
그는 비서관 직을 떠난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 <진실, 광장에 서다>를 썼다. 2005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김정남씨는 "미진하고 거칠지만 엉성한 밑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며 "불과 20년 안팎이 지난 일인데 그때를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아 기억을 되살리고, 당시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기록함으로써 후세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에 대해 2007년 <조선일보>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 지지 모임인 '국가미래전략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오보인 걸로 밝혀졌다. 당시 <오마이뉴스>의 취재에 김정남씨는 "그쪽에 있는 사람들이 더러 나를 존경한다고 왔다갔다 했지만 실제 아무 관계가 없다"며 "다소 의도적으로 (이름을) 넣은 게 아니냐 생각도 드는데 관계 없는 일"이라고 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