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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입증한 종현 사망보도, 이런 게 왜 '단독'이냐

[주장] 안타까운 죽음 이후 펼쳐진 '무간지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17.12.19 14:28최종업데이트17.12.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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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샤이니 종현이 18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쓰러진 채 발견, 병원에 옮겨진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종현이 옮겨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소식을 들은 팬들이 모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무간(無間) 혹은 아비(阿鼻) 지옥. 불교의 사바세계에서 중생들이 지은 죄로 인해 가게 되는 팔열 지옥 중에서도 가장 극한의 지옥. 뜨거운 불길로 고통받는 여덟 가지 지옥 중 끊임없이(무간) 지독한 고통을 받게 되는 옥중의 옥.

18일 오후,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들려왔고 곧이어 이 무간지옥이 펼쳐졌다. 자살과 관련된 알고 싶지 않은, 알 필요도 없는 디테일들이 쏟아졌다. 이러한 보도 이후,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는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이나 친구의 행방이 걱정된다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는 팬임을 자처하며 목숨을 끊고 싶다는 글까지 등장했다.

정해진 순서처럼, 19일 오전 '베르테르 효과'가 실시간 검색어에 출현했다. 또 그 베르테르 효과를 설명하는 짧은 기사가 올라오고, 그 기사가 클릭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유명인이나 평소 존경하는 인물의 자살에 이어지는 자살시도, 즉 '모방 자살'이나 '자살 전염' 등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학습을 거친 지 오래다. 고 최진실 사건 때부터 그랬고, 이후 비슷한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패턴은 반복됐다.

그러나 변한 건 없다. 오히려 매체 지형이 뒤바뀌면서 이 자살을 부르는 '무간지옥'은 훨씬 더 고통스럽게 변모했다. '어뷰징'과 '실시간 검색어 장사'를 위한 각종 매체의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졌고, 소셜미디어에는 이를 퍼 나르는 글이 애도의 글을 덮었다. '샤이니' 종현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펼쳐진 보도 풍경이다. 보도가 보도를, 기사가 기사를 낳는, 이 괴물과도 같은 '무간'의 보도 지옥.

눈 뜨고 볼 수 없는 보도들

▲ 고 종현, 영원히 기억될 아티스트 18일 사망한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고 종현의 빈소가 19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일반인 조문은 같은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3호실을 통해 가능하다. 발인은 21일 오전 9시. ⓒ 사진공동취재단


"그룹 샤이니 종현, 숨진 채 발견..."

한 일간지가 18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포털에 전송한 기사 제목의 일부이다. 이 기사는 그러나 "김(종현)씨는 18일 오후 6시 반쯤 서울 청담동의 한 오피스텔 방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 구조된 김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현재 중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제목은 "숨진 채 발견"이지만, 기사 내용은 "현재 중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속보'고, 누구를 위한 '사실 보도'인가. 해당 기사는 19일 오전 6시경까지 내용은 몇 차례 이리저리 수정됐지만, 제목은 살아남았다.

누군가의 죽음조차 누더기처럼 사실이 기워진 채 수정을 일삼았다. 수준 미달일뿐더러, 선의는커녕 악의마저 의심되는 기사들이 등장했다. 결국, 이익을 얻는 것은 '클릭 장사'에 열을 올린 해당 언론사뿐이다.

"자살 예방을 위해 가급적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으며, 보도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자살을 미화·합리화하거나 실행방법을 묘사하지 않는다."

인권보도준칙 중 '개인의 인격권'에 해당하는 '자살 사건 보도' 관련 제1원칙이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1년 제정하고 2014년 개정한 준칙이다. 이외에도 한국기자협회는 2004년 10월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제정했고, 2013년 9월에도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마련했다. 무분별한 자살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자살 보도 권고 기준 2.0 중 일부 발췌
9가지 원칙

1.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2.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상세 내용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4. 자살 보도에서는 유가족 등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5.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합니다
6.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7.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합니다
8. 자살 예방에 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9. 인터넷에서의 자살 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실천 세부 내용

제2장 최소한의 자살 보도에서도 이것만은 절대 하지 않는다.

제2조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
1. 제목에는 '자살'을 포함하지 않아야 합니다.
2. 자살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됩니다.
3. 자살 보도는 주요 지면을 피해야 합니다.
4. 자살과 관련된 언어 표현은 신중하게 선정해야 합니다.

제3조 자살과 관련된 상세 내용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1. 자살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절대 피해야 합니다.
2. 자살 보도에서 자살 장소를 포함시켜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자살 보도의 폐해를 극대화시킵니다.
4.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대부분 오보이므로 삼가야 합니다.
5. 자살 동기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표현은 자살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제4조 자살 보도에서는 유가족 등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1. 자살자와 유가족의 신분이 노출될 정보는 보도하지 않아야 합니다.
2. 자살 보도에서는 유가족과 주변인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부터 구체적인 자살 장소와 방법까지…. 우리가 지금 사는 '무간지옥'에서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언론사들, 데스크들의 눈에는 이미 잘 마련돼 있는 자살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오후부터 쏟아진 보도는 '목불인견'의 수준이었다.

누가 '기레기'임을 스스로 입증하는가

18일 사망한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고 종현의 빈소가 19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일반인 조문은 같은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3호실을 통해 가능하다. 발인은 21일 오전 9시. ⓒ 사진공동취재단


훨씬 더 건조하고 간략한 사실만, 최소한으로 보도했어도 충분한 기사들이 대다수였다.

'클릭 장사'의 목적이 아니었다면, 해당 언론사마다 단신과 종합 등 최대 두세 건에서 서너 건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기사들이 포털을 뒤덮었다. 도저히 단독일 수 없는 기사마저도 '단독'이란 수식이 붙은 채 '클릭 장사'에 이용됐다.

적지 않은 국민이 기자들을 향해 "기레기"라고 비난하며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포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사를 소비하는 국민들이, 평소 국내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얼마나 불만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제 오후부터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쏟아진 자살 관련 보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스스로 '기레기'임을 자처하고 입증하는 매체가 수두룩하다. 비극이다. '인권'이 후퇴한 한국사회의 현주소가 이 정도다. 한류스타이고, 국경을 넘어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며, 작가이자 DJ로 활동했던 한 연예인.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한국사회의 민얼굴을 다시 보여줬다.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줘"라고 절절하게 호소했던 '샤이니' 종현.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매체는 "수고했다"는 기사보다 반인권적인 보도에 매진하고 있다.

안타깝고도 황망한 죽음 앞에,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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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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