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달리기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처음엔 자폭하려는 남자를 떠올린 그는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다가 무성 흑백 형식의 코미디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가닥을 잡고 이야기와 인물을 덧붙였다고 한다. 단편이 장편을 잉태한 셈이다.
제목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와 인물 모금산엔 <레몬타임> <만일의 세계>에 나타난 바 있는, 시에 빚진 '제목'과 필사적으로 사는 삶을 다룬 '내용'이란 특징이 녹아있다. 박인환 시인이 죽기 3일 전에 썼다고 알려진 시 '미스터 모의 생과 사'는 제목 외에 모금산에게 드리운 죽음에 영향을 주었다. 성인 '모'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아무 모(某)일 수도 있고, 모금산의 직업인 이발사와 관계있는 터럭 모(毛)일 수도 있다. '금산'은 극 중 무대이면서 임대형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죽음을 맞닥뜨린 모금산을 중심으로 힘겨우나 필사적으로 버텼던,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는 삶을 조명한다. 보통 갑작스레 죽음의 통보를 받는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들, 예를 들면 <50/50><원 위크><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같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겪곤 한다. 이런 설정을 모금산도 통과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모금산이 품은 죽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 아들에 대한 마음, 자신에 대한 연민은 일상의 행동, 그가 쓴 일기,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 등에서 드러난다. 영화를 찍으면서 스데반은 예전엔 미처 몰랐던 아버지를 만난다. 예원과 스데반은 잃어버렸던 용기와 사랑을 회복한다. 영화는 수영장에서 만난 은행원, 술집의 주인, 길에서 인사를 하는 학생 등 모금산의 삶을 구성하던 인물들도 비춘다. 그렇게 관계의 소중함을 들려준다.
아날로그의 깊은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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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 아날로그의 감성이 깊이 새겨져 있다. 영화는 흑백 영화란 형식 안에 추억을 자극하고 낭만이 느껴지는 것들을 채웠다. 최근 <동주><북촌방향><지슬><춘몽> 등 흑백으로 만든 한국 영화가 많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왜 흑백을 선택했을까? 임대형 감독은 "원색이 영화의 톤과 맞지 않았고, 흑백이 관객이 캐릭터의 대사와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도울 것이며, 기주봉 배우가 흑백과 절묘하게 어울렸다"고 선택을 부연한다.
이발관과 금산은 공간으로, 극 중 흑백 무성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는 장치로서 향수를 건드린다. 영화엔 도시화, 산업화의 영향을 받아 사라져가는 것들이 담겨있다. 이발관은 점차 미용실(미장원)에 밀려 없어지는 추세다. 스데반과 예원은 아파트 개발로 인해 바뀐 금산 풍경을 만난다. 서울에 온 모금산은 과거 자신이 살았던 곳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털어놓는다. 임대형 감독은 "낡았거나 감상적이란 오명 아래 외면받는 몇 가지 중요한 인간적 감성과 의식을 제자리로 복귀시켜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 속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는 모든 이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란 느낌을 준다. 인물 모금산과 배우 모금산이 합쳐지는 시사회 장면은 <여배우는 오늘도>의 3막에서 보여주었던 삶과 영화의 관계와 겹쳐진다.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실'의 경계는 사라지고 희극과 비극은 함께 어울리며 정동을 불러일으킨다.
임대형 감독은 '불발'로 끝맺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의 다음 장면에서 모금산에게 불꽃놀이를 선물한다. 모씨 또는 아무개, 바꾸어 말하면 당신 또는 우리의 인생은 불발이 아니었다고 위로하는 듯하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란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명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가 실로 어울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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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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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꿈이었던 이발사,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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