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대배우 남문희와 이제훈은 찰떡궁합을 보인다.
리틀빅픽쳐스
위안부 피해자 나옥분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왜 영어를 배우려는지 묻는 민재에게 나옥분 할머니는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놓는다. 영어를 할 줄 몰라 통역에게 의지했다가 통역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왜곡한 것이다. 옥분 할머니는 이 대목에서 울분을 터뜨린다. 민재도 진심을 알고 옥분을 돕기로 마음먹는다. 늦은 나이에 영어를 배우려는 옥분의 노력과, 열과 성을 다해 영어를 가르치는 민재의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또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돌아보게도 해준다. 옥분 역의 나문희와 민재로 분한 이제훈의 찰떡궁합은 영화의 또 다른 묘미다.
일본의 막강한 로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옥분 할머니는 마침내 미국으로 건너가 청문회에 증언하려 한다. 옥분 할머니로선 그간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발휘할 기회였다. 그런데 결정적 순간에 예기치 못한 장벽에 부딪힌다. 일본이 로비력을 총동원해 할머니의 증언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미국 의원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일본에 우호적인 미국 의원들은 일본 측이 내놓은 자료를 근거로 할머니의 증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은 더 노골적이다. 옥분 할머니에게 대놓고 "얼마만큼의 돈을 원해? 당신 실수하는 거야!"라며 호통을 친다.
이 지점에서 또 한 번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려야겠다. 난 현지시각으로 지난 4월 5일 워싱턴 D.C.를 방문했었다. 마침 이날 워싱턴 D.C.엔 고고도 미사일 배치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자 시민사회에서 보낸 대표단이 도착해 있었다. 현지 교민들의 활동 단체인 미주 시민희망연대(아래 희망연대)가 대표단의 현지 일정수행을 도왔다. 이때 희망연대의 한 관계자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네줬다.
"한국에서 이렇게 대표단이 왔지만, 미국 정계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장담을 못 하겠다. 워싱턴에는 한국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창구가 많지 않다. 일본은 정반대다. 이곳 싱크탱크들은 대부분 일본에 우호적이다. 일본도 로비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실제로 워싱턴 정계에 한국의 입장을 대변할 이들은 많지 않다. 헤리티지 재단이나 CSIS,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브루킹스 등 워싱턴 D.C.의 저명한 싱크탱크들도 대부분 일본의 시선으로 동아시아 문제를 조명한다. 한편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를 때마다 외교 창구를 총동원해 쟁점화를 막아 왔다.
나옥분 할머니의 의회 증언 장면은 무척이나 극적이다. 특히 옥분 할머니가 일본 대표단을 향해 사과하라고, 당신들에게 용서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사자후를 토해내는 장면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장면은 오로지 '영화적'으로 봤을 땐,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전형적인 장치다. 그러나 일본이 워싱턴 정계에 행사하는 로비력을 생각해 보면, 그저 '전형적이다'라고만 치부할 수만은 없다.
공무원은 '나대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