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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월드컵 가는 한국 축구, 첫 단추부터 다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A조] 우즈베키스탄 0-0 한국

17.09.06 08:04최종업데이트17.09.06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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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한국 황희찬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까다로운 어웨이 경기에서 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자신만만하게 활짝 웃지는 못했다. 한국 축구팬들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사토 류지(일본) 주심의 종료 휘슬을 간절히 기다려야 했다. 이란이 추가 시간 끝날 때까지 더 실점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한국 축구는 이란에게 큰 신세를 진 셈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한국 축구는 깨끗하게 고개 숙이고 모자란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 이대로는 월드컵 본선에 가서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6일 오전 0시 타슈켄트에 있는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A조 우즈베키스탄과의 어웨이 경기에서 0-0으로 비겨 2위 자리를 가까스로 지켜내며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위업을 이뤘다.

유연한 수비 전술은 칭찬해야

경고 누적 징계로 오른쪽 풀백 최철순 카드를 내밀지 못한 신태용호는 '김영권-장현수-김민재'로 이루어진 쓰리 백 시스템을 들고나왔다. 여기서 장현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하기도 하며 유연한 수비 전술의 핵심 역할을 해냈다. 왼쪽 윙백은 김민우, 오른쪽 윙백은 고요한이 맡았다.

그런데 전반전도 끝나기 전에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42분, 우즈베키스탄 미드필더와 공 다툼을 벌이다가 다친 장현수가 끝내 들것에 실려나갔다. 한국 벤치에서는 급하게 구자철을 들여보내야 했다. 실질적인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해낸 장현수가 빠지자 한국은 어쩔 수 없이 4-2-3-1 포메이션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기성용의 빈 자리가 크게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새내기 센터백 김민재가 실수에 대한 압박감이 크게 밀려오는 분위기 속에서도 듬직하게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것이다.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이 36분에 경고를 받아 몸싸움을 과감하게 도전하기 어려웠지만 경험 많은 구자철이 후반전 중원의 균형을 비교적 잘 잡아준 것이다.

반드시 한국을 이겨야 했던 우즈베키스탄은 경기 시작 후 21분만에 미드필더 하이다로프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한국 골키퍼 김승규의 다이빙을 넘어 왼쪽 기둥을 때리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후반전 교체 선수 게인리히는 결정적인 왼발 슛을 날렸지만 김승규 골키퍼가 침착하게 각도를 잡고 쳐내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2경기 무득점, 세트 피스 준비한 것 맞나요?

지난 달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란을 상대로 유효 슛 제로라는 부끄러운 성적표를 찍어낸 한국 공격수들은 이 경기 우즈베키스탄의 수비 라인이 여러 차례 흔들렸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미드필더부터 공격수에 이르기까지 매끄러운 패턴 플레이로 슛까지 이어진 장면은 57분, 이근호의 오른발 감아차기 슛 과정 뿐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득점 기회가 후반전 끝무렵 몇 차례 이어졌지만 그 때는 이미 우즈베키스탄의 수비 라인이 완전히 무너진 뒤였기 때문에 한국의 패턴 플레이가 필요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나고 새로운 코칭 스태프가 구성되는 바람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공격적인 면에서 골을 만들어낼 정도로 자신 있는 조직력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공격적인 패턴 플레이나 프리킥 세트 피스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한국은 31분에 황희찬이 중앙선 부근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상대 골문으로부터 비교적 먼 거리였기에 정우영이 오른발로 세트 피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공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료 선수 근처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싱겁게 공 소유권을 우즈베키스탄에 헌납한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세트 피스 장면은 35분에 또 나왔다. 권창훈이 얻어낸 프리킥 세트 피스에서도 무모한 롱 킥이 멀리 떨어져 애꿎은 손흥민만 오른쪽 구석으로 헉헉거리며 달려야 했다. 상대 페널티 지역 부근이 아니었지만 목적 없이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롱 킥 세트 피스 두 개(31분, 35분)는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패턴 플레이나 조직력을 의심할만한 장면은 후반전에도 이어졌다. 54분, 우즈베키스탄의 수비 라인이 공간을 쉽게 내주기 시작했고 한국의 역습 패스가 위험 지역으로 전달됐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페널티 지역 부근에서 공을 잡은 한국의 두 선수는 방향이 엇갈리며 다음 동작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오른발 대각선 슛을 시도할 수 있는 타이밍도 놓쳤고 반대쪽 공간을 파고드는 동료를 쳐다볼 여유도 보이지 않았다.

"이란 대표팀 고마워요"

한국 벤치에서는 64분에 권창훈을 빼고 염기훈을 들여보내며 유효 슛 기회를 많이 만들어냈다. K리그 클래식 수원 블루윙즈의 자존심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염기훈의 클래스가 빛난 것이다. 염기훈의 크로스와 패스 수준은 이전에 뛰던 측면 미드필더들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염기훈이 들어오고 단 1분만에 위력적인 유효 슛을 비로소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크로스가 날카롭게 넘어온 것을 우즈베키스탄 수비수들이 가까스로 걷어내다가 김진수의 왼발에 걸렸다. 김진수의 슛을 홈 팀을 이끌고 있는 노련한 골키퍼 네스테로프가 몸을 날리며 쳐냈다. 아직까지 신태용호가 골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처음으로 시원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78분에 이근호 대신 들어온 골잡이 이동국은 86분에 김민우의 왼쪽 크로스를 받아 스파이크 헤더로 우즈베키스탄의 골문을 크게 흔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온 것이었다. 이동국은 89분에 더 좋은 득점 기회를 잡아 오른발 슛을 날렸지만 우즈베키스탄 골키퍼 네스테로프의 슈퍼 세이브에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바로 이어진 손흥민의 오른발 슛까지 오른쪽 기둥을 벗어나고 말았으니 결정력 부족이라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이 또 떠올랐다.

같은 시각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과 시리아의 경기 결과는 한국대표팀에게 승리 소식만큼이나 절실한 부분이었다. 13분에 시리아의 모하므드가 선취골을 터뜨리는 바람에 한국으로서는 우즈베키스탄을 반드시 이겨야 했다. 하지만 이란에게는 사르다르 아즈문이라는 걸출한 골잡이가 있었다. 아즈문이 45분과 64분에 연속 골을 기록하며 점수판을 뒤집어버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은 아즈문 덕분에 월드컵 본선에 비교적 쉽게 오른 셈이었다.

시리아의 오마르 알 소마가 후반전 추가 시간 3분에 극적인 2-2 동점골까지 터뜨리며 러시아행 직행 티켓 싸움을 한국에게 걸어왔지만 끝내 이란의 골문은 재역전골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리아는 우즈베키스탄을 당당히 밀어내고 아시아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 B조 3위(사우디 아라비아 또는 호주)와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겼다.

이 과정만 봐도 한국 남자축구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결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의 의식이나 축구협회에 스며든 거품을 겸허하게 걷어낸 다음,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운다는 마음으로 새출발해야 한다. 아시아 축구 판도에서 한국의 새로운 라이벌이 된 이란이 준 소중한 기회를 발로 걷어차지 않도록 안팎으로 단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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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A조 결과(6일 오전 0시, 분요드코르 스타디움-타슈켄트)

★ 우즈베키스탄 0-0 한국

◎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 황희찬, 이근호(78분↔이동국)
MF : 김민우, 권창훈(64분↔염기훈), 정우영, 고요한
DF : 김영권, 장현수(43분↔구자철), 김민재
GK : 김승규
- 경고 : 정우영(36분), 하이다로프(38분), 이스마일로프(71분), 크리메츠(83분)

★ 이란 2-2 시리아
★ 카타르 1-2 중국

◇ A조 최종 순위
1 이란 22점 6승 4무 10득점 2실점 +8 ***** 본선 진출 확정!
2 한국 15점 4승 3무 3패 11득점 10실점 +1 ***** 본선 진출 확정!
3 시리아 13점 3승 4무 3패 9득점 8실점 +1 ***** 아시아 플레이오프 진출(B조 3위와 대결)
4 우즈베키스탄 13점 4승 1무 5패 6득점 7실점 -1
5 중국 12점 3승 3무 4패 8득점 10실점 -2
6 카타르 7점 2승 1무 7패 8득점 15실점 -7

◇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팀
러시아(개최국)
한국, 이란, 일본(이상 아시아)
브라질(남아메리카)
벨기에(유럽)
멕시코(북중미&카리브해)
축구 신태용호 월드컵 황희찬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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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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