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복씨와 80년 당시 운행하던 차량사진속 김사복씨 오른쪽으로 보이는 검은 승용차가 김씨가 당시 운행하던 차량이다. 김승필씨는 '이 차가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갔을 차량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권우성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얼어붙었던 국내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가 되고 있다. 1980년 그날의 광주항쟁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 했던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그리고 김포공항까지 무사히 태운 한 택시 기사의 사연은 그만큼 다수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영화 속 감동과 별개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고 힌츠페터 기자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힌츠페터가 사망 전까지 애타게 찾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행방이다. 현재까지 정확한 이름은 물론이고, 생존 여부도 알려진 게 없다. <택시운전사>의 제작사인 더 램프 측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동명의 택시 기사 여러 명을 수소문했으나 모두 당사자가 아니었다.
이 와중에 영화 개봉 3일 후인 지난 5일 (힌츠페터와 동행했던) 김사복씨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이가 트위터에 첫 글을 올렸다. 본명 김승필(59)씨. 그는 본인을 김사복씨의 큰 아들이라 소개하며 "영화를 보고 늘 제 안에 계셨던 영웅이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는 소회를 올렸다. 파장은 컸다. 해당 글만 1500회 이상 공유됐고, 여러 댓글도 달렸다. 진위 여부에 대한 궁금증이 주된 반응이었다.
<오마이뉴스>는 5일부터 김승필씨를 수소문, 현재까지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사실 확인 및 인터뷰 요청에 그는 "제작진과 함께 확인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입장을 전했고, 지난 2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만날 수 있었다. 몇 언론이 그와 접촉 중이나 김승필씨의 부친 김사복씨의 사진과 당시 상황에 대한 맥락은 이 지면에서 최초 보도한다.
정황 증거들 그리고 증인들그날 이후 37년이 흘렀다. 2003년 위르겐 힌츠페터가 송건호 언론상을 받을 때 처음 세상에 알려진 김사복이라는 이름. 그 이후 광주시와 5·18 기념재단 등은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실명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광주에 진입했던 힌츠페터와 음향 기사 모두 사망한 상태기 때문이다.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한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 역시 김사복씨의 얼굴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부인의 체류 기간 중 김승필씨는 부인을 직접 만나고 싶어 했으나 제작사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모든 게 정황 증거뿐이기 때문.
그렇다면 김승필씨는 왜 자신의 아버지가 힌츠페터와 동행했던 '김사복씨'와 동일인이라고 말하는 걸까. 김씨의 아버지도 택시운전을 했으며, 이름이 김사복이다. 또, 광주항쟁 당시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다녀왔다고 한다. 우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김승필씨의 부친 김사복씨가 힌츠페터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광주 항쟁에 다녀오셨다는 사진이 존재한다면 가장 좋을 텐데 결국 정황증거뿐인 건지."그 분(힌츠페터)과 사진 찍은 게 있으면 좋지. 근데 그 분과 석 달이든 생활했다면 같이 사진을 찍고 했을 텐데, 소개를 받아 광주에 가셨고 1박2일만에 오신 거다. 그것도 어디 여행 간 게 아니라. 무엇 때문에 광주에 가셨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중요한 건 우리 아버지가 김사복씨인지, 그리고 뭘 했던 분인지 인데 아버지가 운수업을 하셨다. 이런 건 다 증명이 된다."
- 운수업이라는 게 정확히? 개인택시나 조합택시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호텔 택시를 하셨다. 당시 1984년, 1988년 올림픽을 겨냥해서 서울시 운수과에서 호텔규모에 따라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차에 면허를 내줬다. 아버지는 회현동의 '파리스 호텔' 명의 차를 지입식으로 운수업을 한 거다. 차종은 영화에 나온 브리사나 포니 그런 게 아닌 중형급 차였다.
아버지가 운행하던 차가 총 3대였다. 하얀 넘버 두 대와 초록색 넘버 하나. 번호는 1091, 1092 그리고 8484로 기억한다. 그 거래를 어디랑 했냐면 당시 문화공보부와 수의 계약을 했다. 이용희씨라고 담당이 있다. 또 당시 외국인을 초청하는 섭외과가 있다. 거기 김상술씨라는 사람과 거래했다. 어떻게 내가 잘 아냐면 아버지가 1984년 12월 19일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제가 그 사업을 받아서 얼마 간 운영을 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거래하던 분을 다 만난 거지. 아버지 사진이 공개되면 안 다고 하시는 분이 많을 거다. 언론인, 공무원 등."
- 그럼 영화에 묘사한대로 우발적으로 힌츠페터를 태운 게 아니라 이미 어떤 사안인지를 알고 태웠다는 건가."당시 아버지는 외국 언론사, 광화문 일대 공무원 등과 거래한 분이다. 그 분야에서 인기가 좋았다. 소개를 통해 받았을 거다. 운전하시는 분들 보통은 영어가 안 되잖나. 아버지는 능수능란하진 않았지만 영어를 좀 하셨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아버지를 소개했다. 우리가 알기로 일본 NHK 히로세 아저씨라고 기자 분이 있다. 우리랑 친했는데 그 분이 피터 아저씨에게 아버지를 소개한 걸로 알고 있다. 제가 아버지께 듣기론 독일기자 두 분이랑 들어갔다고. 다른 한 분이 음향담당이었다. 그때는 아버지께서 독일기자 분이라 하지 않고 저먼TV(German TV)랑 다녀왔다는 말을 하셨다."(힌츠페터 기자는 독일 ARD-NDR 소속이다-기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