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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신서유기4>, 뭘 해도 다 되는 나영석의 양날개

[TV리뷰] 무던한 듯 보여도 멈추지 않았던 실험, 지금의 나영석 PD를 만들다

17.06.16 13:55최종업데이트17.06.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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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tvN 리얼막장 모험활극 <신서유기4 : 지옥의 묵시록> 제작발표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어느 집단에나 그 구성원들을 선도하는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 '이끎'은 집단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또 그 집단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만약 그 집단을 '대한민국 예능계'로 좁혀본다면, 그리고 그 '직업군'을 PD로 국한한다면, 우리는 그에 합당한 인물로 두 명의 이름을 당장 떠올릴 수 있다. 좋다, 기왕 하는 김에 좀 더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해보도록 하자. 대한민국 예능계에는 두 명의 PD가 존재한다. 바로 MBC의 김태호 PD와 tvN의 나영석 PD 말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잘할 뿐 아니라 심지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을 두고 우열(優劣)을 가리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굳이 그런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한번 해보도록 하자. 처음부터 '자극적'이기도 작정을 했으니 말이다. <무한도전>이 '국민 예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김태호 PD가 <1박 2일>의 나영석 PD보다 주목받았던 게 사실이다.

주요 타깃층이 '젊었던' 탓도 있겠지만, 김태호 PD의 연출은 확실히 실험적이었고 도전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웃음과 재미를 놓치지 않았고, 정치적인 풍자와 사회적 비판 의식도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반면, 나영석 PD는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1박 2일>의 연출을 맡았기에 전반적으로 무난한 느낌을 유지했다. 간혹 출연자들을 상대로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나영석 PD는 그가 입고 있는 옷 스타일처럼 무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김태호 PD를 보면, 약간은 정체돼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여전히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임이 틀림없고, 그런 프로그램을 12년 동안 이끌어 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일 것이다. 이 '정체돼 있다'는 평가는 '상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2012년 12월 KBS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13년 1월 CJ E&M으로 이적을 결정했던 나영석 PD의 결단력과 이후 그가 거둔 성과와 족적이 워낙 또렷하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나영석의 새 둥지, 새 실험

나영석 PD의 대표적인 브랜드,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 시리즈. ⓒ tvN


자신의 둥지와도 같은 곳을 뛰쳐나와 완전히 새로운 공간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연달아 최고의 성적을 거둔다는 것 또한 '기적'이리라. CJ E&M으로 자리를 옮긴 나영석 PD는 '화수분'마냥 그동안 쌓아뒀던 아이디어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배낭여행'이라는 콘셉트로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등 <꽃보다> 시리즈를 연속해서 히트시키는 한편, <삼시 세끼> 시리즈로 농촌과 어촌의 각기 다른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무엇보다 나영석 PD가 보여준 '섭외의 미학'은 예술의 경지라 할 만했다.

<꽃보다>와 <삼시 세끼> 시리즈가 배우와 가수 등 그동안 예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비 예능인을 섭외해 '프로의 맛'을 제거한 신선하면서도 조용한 프로그램이었다면, '서유기(西遊記)'의 캐릭터를 빌린 <신서유기> 시리즈는 아예 대놓고 왁자지껄 시끄러운 방송을 추구한다. '막장'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독하게 웃음 사냥에 매진한다. 과거 <1박 2일>을 함께 했던 멤버들(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과 재결합하면서 당시의 기분을 맘껏 냈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인재(안재현, 규현, 민호)를 발굴하는 데도 멈춤이 없었다.

올해 상방기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윤식당>. ⓒ tvN


'구님' 구혜선과 깨 볶는 신혼을 보내고 있던 안재현을 통해 <신혼일기>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했고, 이는 나영석 PD가 그동안 줄곧 강조했던 '예능의 다큐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방송이었다. 물론 그 연출과 편집을 '나영석 사단'인 이우형 PD가 전담했지만, 프로그램 전반에 나영석 PD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또, 올해 상반기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윤식당>(연출 이진주 PD)도 빼놓을 수 없다. 윤여정, 신구, 이서진, 정유미가 출연했던 <윤식당>은 최고 시청률 14.141%를 기록할 만큼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대중의 판타지를 적확히 포착해 이를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나영석 PD는 <윤식당>을 통해 '은퇴 후 자영업'이라는 공식을 친절히 풀어 보여줬다. 물론 그것이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은 큰 위안을 받았다. 또, 윤여정(과 신구)을 통해 '꼰대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을 갈망하는 시대적 고민에 자신만의 대답을 던지는 등 대중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힐링'이었다.

다른 색깔의 두 날개

나영석 PD의 신작 <알쓸신잡>과 <신서유기4>. ⓒ tvN


거침없이 '나영석 월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연출 양정우 PD)을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등 잡학박사에 '청자' 역할인 유희열을 투입한 이 기묘한 조합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아재들의 수다'라는 콘셉트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다소 '피곤'하게 다가올 수 있음에도 1회(5.395%)보다 2회(5.687%)의 시청률이 상승하는 등 반응이 매우 폭발적이다.

<신서유기4>와 <알쓸신잡>에 등장한 나영석 PD. ⓒ tvN


현재 나영석 PD는 <알쓸신잡>과 <신서유기 4>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의 양 날개를 달고 순항 중이다. '교양'과 '품격'을 강조한 <알쓸신잡>과 오로지 웃음만을 향해 맹목적인 질주를 하는 <신서유기 4>는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 13일, <신서유기 시즌4>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던 나영석 PD는 "<알쓸신잡>은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일 사랑하는 프로그램은 <신서유기>"라는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큐'가 예능의 미래라 언급했던 그이지만, 그래도 예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웃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말이리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욱 큰 걸음을 뗄 수 있었던 나영석 PD. CJ E&M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속에서 자신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나영석 PD. 그는 현재 누구보다도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예능 PD가 됐다.

나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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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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