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 영화 <아름다운 결혼>(1982) 포스터
에릭 로메르
남녀 간의 로맨스를 주로 다루었던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기대될 법한 해피엔딩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14일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아름다운 결혼>(1982)과 <해변의 폴린>(1983)은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주인공들을 시련에 빠트리는 설정들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에릭 로메르의 '희극과 격연'의 연작에 속하는 <아름다운 결혼>과 <해변의 폴린>은 "망상을 안 해본 이가 어디 있겠는가. 상상의 성을 안 지어 본 이가 어디 있으랴.", "입소문 내기 좋아하다 자기가 다친다." 등 유명 작가, 철학가들이 남긴 명언으로 이야기의 서문을 연다.
'희극과 격연'의 두 번째 작품으로 제작된 <아름다운 결혼>의 주인공 사빈(베아트리스 로망 분)은 유부남인 시몽(페오도르 아킨 분)과 밀회를 즐기다, 문득 시몽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마침 사빈의 절친한 친구 클라란스로부터 그녀의 사촌인 에드몽(앙드레 뒤솔리에 분)을 소개받는다. 에드몽은 유능한 변호사이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에드몽과 첫 데이트를 즐긴 사빈은 에드몽에게 푹 빠지게 되고, 곧 그와 결혼할 환상을 품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드몽은 사빈에게 호감 이상의 별다른 감정은 품지 않는 것 같다.
결말은 예상 그대로다. 하지만 사빈은 좌절하지 않는다. 대신 에드몽보다 훨씬 더 괜찮고 멋있는 남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실제 엔딩에서 사빈에게 첫눈에 반한듯한 남자가 나타나 새로운 국면 전환을 알리며 영화가 끝난다. 사실,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에 관한 답은 이미 오프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가는데도 불구,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재미있다.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의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이해하기도 쉽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오랜 시간 대중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 중 하나다.
그래도 <아름다운 결혼>은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희망적인 결말과 함께, 결혼을 꿈꾸는 여성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았던 반면, <해변의 폴린>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영화다. 마치 홍상수 감독의 2000년대 작품들을 보는 기분이다. <아름다운 결혼> 또한 남녀 간의 자유 연애를 표방하고 있지만, <해변의 폴린>은 한술 더 뜬다.
파국 속에서 피어난 지독한 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