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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가 '한국의 에릭 로메르'라고? 에릭 로메르가 누구길래...

[기획] 에릭 로메르의 작품 세계 맛볼 수 있는 기회, 다음달 7일까지 회고전 열려

17.04.16 18:20최종업데이트17.04.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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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1920~2010)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그는 프랑수아 트뤼포, 장뤼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등과 함께 누벨바그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에릭 로메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대중들에게 알려진 작품은 제4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녹색광선>(1986)이다. 그 이전에도 에릭 로메르는 꾸준히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왔지만, 트뤼포, 고다르 등에 비해서 그의 영화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고, 덜 알려져 왔다.

홍상수와 에릭 로메르의 상관관계

 4월 12일부터 5월 7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에릭 로메르 회고전' <연애의 모럴> 포스터.
4월 12일부터 5월 7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에릭 로메르 회고전' <연애의 모럴> 포스터.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지난 13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에릭 로메르 회고전 <연애의 모럴>은 에릭 로메르가 누벨바그 대표 기수이고 <녹색 광선>의 감독 정도로만 알고 있는 관객들이 에릭 로메르의 작품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도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에릭 로메르 회고전 덕분에 에릭 로메르 영화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흔히들 홍상수 감독을 두고 '한국의 에릭 로메르'로 비유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제6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다른 나라에서>를 극찬하며, 홍상수 감독을 '한국 영화의 에릭 로메르'로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 홍상수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의 <늦봄>(1949), 루이스 브뉘엘의 <절멸의 천사>(1962)와 함께 <녹색 광선>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기도 했다. 엄연히 말해서 에릭 로메르 영화와 홍상수 영화를 두고 아주 비슷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오죽하면 에릭 로메르 회고전 이름이 '연애의 모럴'일까) 지질하고 무책임한 남자들로 상처받은 여자들의 시점에서 영화를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 에릭 로메르와 홍상수를 종종 비교하려고 하는 듯하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부터 지난 3월 개봉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홍상수 영화를 쭉 돌이켜보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작품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마무리를 언급하자면,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의 엔딩이 되겠다. 그만큼 홍상수 영화에는 유독 해피엔딩이 드물었다. 그의 영화에 유독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남자와 여자가 빈번하게 등장한 탓도 크겠지만,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영화 속 주인공을 파멸로 몰아가거나 아니면 끝까지 지질한 인간으로 남겨두는 홍상수식 결말은 비관적이다 못해 염세적인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감돈다.

예상 그대로의 결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로메르 영화 <아름다운 결혼>(1982) 포스터
에릭 로메르 영화 <아름다운 결혼>(1982) 포스터 에릭 로메르
남녀 간의 로맨스를 주로 다루었던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기대될 법한 해피엔딩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14일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아름다운 결혼>(1982)과 <해변의 폴린>(1983)은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주인공들을 시련에 빠트리는 설정들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에릭 로메르의 '희극과 격연'의 연작에 속하는 <아름다운 결혼>과 <해변의 폴린>은 "망상을 안 해본 이가 어디 있겠는가. 상상의 성을 안 지어 본 이가 어디 있으랴.", "입소문 내기 좋아하다 자기가 다친다." 등 유명 작가, 철학가들이 남긴 명언으로 이야기의 서문을 연다.

'희극과 격연'의 두 번째 작품으로 제작된 <아름다운 결혼>의 주인공 사빈(베아트리스 로망 분)은 유부남인 시몽(페오도르 아킨 분)과 밀회를 즐기다, 문득 시몽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마침 사빈의 절친한 친구 클라란스로부터 그녀의 사촌인 에드몽(앙드레 뒤솔리에 분)을 소개받는다. 에드몽은 유능한 변호사이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에드몽과 첫 데이트를 즐긴 사빈은 에드몽에게 푹 빠지게 되고, 곧 그와 결혼할 환상을 품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드몽은 사빈에게 호감 이상의 별다른 감정은 품지 않는 것 같다.

결말은 예상 그대로다. 하지만 사빈은 좌절하지 않는다. 대신 에드몽보다 훨씬 더 괜찮고 멋있는 남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실제 엔딩에서 사빈에게 첫눈에 반한듯한 남자가 나타나 새로운 국면 전환을 알리며 영화가 끝난다. 사실,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에 관한 답은 이미 오프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가는데도 불구,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재미있다.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의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이해하기도 쉽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오랜 시간 대중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 중 하나다.

그래도 <아름다운 결혼>은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희망적인 결말과 함께, 결혼을 꿈꾸는 여성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았던 반면, <해변의 폴린>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영화다. 마치 홍상수 감독의 2000년대 작품들을 보는 기분이다. <아름다운 결혼> 또한 남녀 간의 자유 연애를 표방하고 있지만, <해변의 폴린>은 한술 더 뜬다.

파국 속에서 피어난 지독한 낙관

 에릭 로메르의 영화 <해변의 폴린>(1983) 포스터
에릭 로메르의 영화 <해변의 폴린>(1983) 포스터 에릭 로메르
매력적인 사촌 언니 마리온(아리엘 돔바슬 분)과 바닷가에 휴가온 폴린(아만다 랑글렛 분)은 마리온에게 접근하는 남자들 때문에 곤욕스러운 상황에 엮이게 된다. 폴린은 마리온이 그녀의 옛 친구이자 다정다감한 피에르(파스칼 그레고리 분)과 잘 되길 바라지만, 마리온은 호색한인 앙리(페오도르 아킨 분)에게 푹 빠지고 만다. 오히려 마리온은 또래 친구 살벵과 어울리는 폴린을 못마땅하며, 폴린과 피에르를 자꾸만 이어주려고 한다. 서로를 향한 질투와 못마땅함으로 점철되어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던 이들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러한 웃지 못할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마무리는 에릭 로메르답다. 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겠다는 말. 어쩌면 이 지독한 낙관성이 에릭 로메르의 세계관을 지탱하게 한 원동력인지 모르겠다.

<녹색 광선> 외에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많이 본 편이 아니므로, <아름다운 결혼> <해변의 폴린> 단 두 편만을 가지고 에릭 로메르의 작품 세계를 쉽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이번 회고전을 통해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많이 보았다고 한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이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생에 걸쳐 사랑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은 쉽고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다양하면서 복잡하다. 이런 점에 있어서, 에릭 로메르는 우리들의 삶과 가장 닮아 있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의 영화를 마음껏 즐겨주는 것이 답이다. '연애의 모럴'이라는 부제로 열리는 에릭 로메르의 회고전은 다음 달 5월 7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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