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팔세토 창법, 밀리언셀러, 명창 가문.
가수 조관우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1994년 데뷔한 조관우는 '늪'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님은 먼곳에', '꽃밭에서' 등 히트곡을 선보이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수식어가 더 있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조관우. 그는 성수대교 붕괴 아픔을 노래한 '실락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헌정 곡 '그가 그립다', 세월호 참사를 애통해하는 추모곡 '풍등'을 발표하며 동시대의 슬픔에 마음을 더해왔다. 추모공연 무대에도 꾸준히 섰다.
그는 지금 새 앨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올해 발매될 이 앨범은 무려 14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앨범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그의 소속사 녹음실에서 조관우를 만났다. 인터뷰를 요청할 때 이미 "앨범에 관한 질문보단 세월호와 시대에 관한 질문이 더 많을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세월호 3주기를 열흘 앞둔 날이었다. TV에는 3년 만에 녹슨 몸체를 드러낸 세월호 뉴스가 이어졌고, 조관우는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놨다. 인터뷰하면서 그가 새 앨범에도 세월호 헌정 곡을 넣을 계획이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제이컴 사무실에서 가수 조관우와 인터뷰를 나눴다. ⓒ 제이컴 엔터테인먼트
- 준비하고 있는 앨범에 대해 궁금하다.
"지금 작업 마무리 단계이고 14곡 정도 실릴 것 같다. 젊은 작곡가들과 많이 작업했다. 옛날엔 저에게 맞춘 노래를 달라고 했지만 이젠 젊은 작곡가들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곡을 써달라고 말한다. 앨범 전체에서 젊은 분위기가 날 것이다."
- 인터뷰 전 소속사 대표님께 듣기로, 조관우씨 의지로 'Pray for You'라는 제목의 세월호 헌정 곡을 준비했지만, 앨범에 담을지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
"세월호를 다시 한번 기억하는 노래 'Pray for You(프레이 포 유)'를 완성했는데, 앨범이 하반기쯤 발표될 예정이라 (시기상 추억팔이나 상업적으로 비칠)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수록 여부를 고민 중이다. 조심스럽지만 제 입장은, 내년이 되고 내후년이 되고 10년이 흘러도 이 사건에 대해서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 노래를 통해서 기억되든 어떤 식이든.
산 사람은 살자, 잊을 건 잊자고 하는데 절대 산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억 속에서 그 일을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기억돼야 한다. 뒤로 숨는 어른들의 비겁함도 기억돼야 한다. 책임도 못 지는 이런 불행이 다시 없었으면 하는 거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지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그것이 안 됐으니 지금 시대의 가수로서 그것이 오래 기억되도록 알리고 싶다. 'Pray for You'는 우리 기억 속에서 그들을 지우지 말자는 취지의 노래고, 슬픔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이 하늘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곡이다." (그는 녹음실에서 'Pray for You'를 들려줬는데, 따뜻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곡이었다. 미발표로 남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세월호 추모 노래를 계속 해왔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해에 '풍등'을 발표했고, 12월 31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노래했다. 그날 가을옷을 입고 나갔는데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호흡이 안 되더라. 아이들이 추운 곳에 갇혀 있는 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이 안 되어보면, 당사자가 아니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같다. 이번 음반에서 슬픈 감정을 끌어올리는 노래들을 부를 때 세월호가 계속 떠올랐다. 앨범에 실릴 'Beautiful(뷰티풀)'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작사가는 어떤 의도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 갇혀 있던 아이들이 떠올랐고 내게는 이 노래가 더 세월호 추모곡처럼 여겨진다. (그는 'Beautiful'도 들려줬다)
▲ 조관우는 세월호 추모공연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무대 위에서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유가족을 위로했다. ⓒ 제이컴 엔터테인먼트
- 지난달 16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공연 <기억> 무대에 섰다. 공연은 어땠나.
"저도 울고 유가족도 울었다. 흐느끼지 않고 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노래하는데 턱밑으로 눈물이 그냥 흐르더라. 유가족분이 앞에 다 앉아 계시고, 제가 '풍등'을 부르는데 저를 한 분도 보시지 않더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우셨는데 제가 부르면서도 아픈데 아래서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더라.
이날 유가족합창단도 노래했는데 모든 관객이 기립했다. 그때 가슴이 너무 뭉클했다. 무대 뒤 유가족분들 계신 대기실로 갔는데, '조관우씨가 왔다'며 가족들이 너무 해맑게 웃으시며 반가워하셨다. 사진도 찍자 하시고 웃으시면서 대해주시는데 그게 더 슬프게 느껴지더라. 12월 31일 노래할 때도 난로 옆의 자리를 비켜주시던 생각이 났다."
▲ 가수 조관우가 지난달 16일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공연 <기억>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 제이컴엔터테인먼트
▲ 지난 2013년 5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공연한 조관우. ⓒ 권우성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도 계속했다.
"정치적 색깔은 전혀 없다. 그저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한다. 권좌에 계시면서도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표시낸 분이 아니다. 아픈 사람들 위해서 소리 내주셨고, 굉장히 정의로웠던 분이다. 솔직하신 것 같고. 노 대통령이 군대 고참을 발견하고 '형님'하시며 다가가더라. 권좌를 떠나 형님한테 형님이라 부르고, 고개 숙여서 먼저 인사하실 줄 알던 분이다.
묘 만들어졌을 때도 스스로 간 적이 있는데, 저는 민간인인데도 노사모 분들께서 띠를 풀어주시면서 들어가게 해주시더라. 그때 정치인들과 함께 국화도 헌화했던 기억이 난다. 추모 공연했을 때, 리허설이 끝나고 공연 전에 권양숙 여사님이 사가로 직접 초대해주셔서 가기도 했다. 여사님이 노 대통령께서 앉으셨던 자리에 대통령께서 직접 재배한 쌀을 두셨더라.
저는 정치색을 띠고 싶지도 않고, 그냥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한다. 옆집 사는 형님 같다. 내게 노 대통령 헌정 곡인 '그가 그립다'란 곡이 왔을 때도 저는 두려울 게 없었다. 사랑 앞에 두려운 게 어디 있겠나. 블랙리스트니 뭐니, 그런 게 뭐가 있겠나. 하고 싶어서 한 것일 뿐이다."
- 곧 대선이다. 마음속에 품은 대통령상은 어떤 모습인가.
"정의롭고 솔직하고, 고개 숙일 줄 아는 그런 분. 쥐어짜지 않는 울음을 우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눈물도 진실 돼야 하잖나. 저도 억지로 울어도 봤고, 세월호 추모공연에서 진짜 눈물도 흘려봐서 안다. 그리고 귀를 여는 사람,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자기가 잘 몰라서 못 했던 것들에 대한 사과도 쓰시잖아. 그런 대통령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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