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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버린 알레그리, 유벤투스는 진화했다

17.03.27 14:43최종업데이트17.03.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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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명장이라고 불리는 감독들은 자신만의 올곧은 철학을 지니고 있다. 이적 정책, 훈련 시스템, 선수 관리 등 다양한 부분에서 감독들은 자신의 철학을 나타낸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독들이 본인의 철학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역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전술 역사에서 양 극단에 있는 두 젊은 감독

최근 몇 년간 가장 상반되는 철학을 보여주는 감독이 바로 펩 과르디올라와 디에고 시메오네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라인을 끌어올린 후 높은 점유율과 짧은 패스를 사용한 "티키타카" 전술로 축구계를 지배했다.

이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감독이 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다. 시메오네 감독은 한물갔다고 평가되는 4-4-2 전술을 가져와 강력한 두 줄 수비를 앞세운 압박에 이은 빠른 역습 전개를 팀에 장착시켰고, 이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양강 체제를 무너뜨리는 큰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감독이 자신의 철학을 고집할 때 따라오는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바르셀로나 시절에 과르디올라 감독의 "티키타카"는 결국 리오넬 메시에 의해 완성되었다. 아무리 점유율을 많이 가져오고, 패스가 잘 이어지더라도 결국은 메시의 존재감이 있었기에 바르셀로나는 21세기 최고의 팀이 될 수 있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이에른 뮌헨과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에서 그 당시만큼의 압도적인 축구를 보여주지 못하는 까닭은 메시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매 경기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한다. 시메오네 감독의 기본적인 콘셉트가 엄청난 압박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쉴 새 없이 경기장을 누빈다. 이런 전술 덕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 대적할 수 있는 팀이 되었지만, 동시에 늘 체력적 부담을 안고 있다. 그들은 벌써 5시즌 동안 참가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 레이스를 펼쳐왔다. 아무리 체력 훈련이 잘 되어있는 선수들이라고 해도 이는 충분히 문제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확고한 철학은 강팀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 이면에 그림자는 반드시 존재한다. "공은 둥글다"라는 말이 있듯이, 축구에서 절대적으로 완벽한 팀은 없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팀이라도 결국은 약점이 있고 균열이 생길 것이다. 그 순간에 본인의 철학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유연성을 발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감독의 아주 중요한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고집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감독이 있으니, 바로 유벤투스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이다.

#이탈리아의 철학가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알레그리 감독은 앞서 언급한 과르디올라나 시메오네 감독처럼 유니크한 철학을 지닌 유형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전술은 축구의 기본, 혹은 정석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시한 축구를 보고 있으면, 알레그리가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하는 철학자인지를 알 수 있다.

먼저 알레그리 감독의 수비라인은 조금도 자율성을 가질 수 없다. 수비수들은 완벽하게 통제되어 감독의 지시를 수행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반대로 공격진에게는 엄청난 자율성을 부여했다. 아주 기본적인 전술적 컨셉은 주어지되, 알레그리 감독은 공격수들의 창의성에 제한을 두려고 하지 않았다. 선수들 스스로 재량껏 플레이하기를 요구했다.

미드필더진에게는 각각의 선수들에게 명확한 역할 구분을 지시했다. 여기서 알레그리의 철학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그는 중앙에 세 명의 미드필더를 두는 "트리보테"를 매우 좋아했다. 몇 년 전부터 트리보테가 이미 엄청난 인기를 누려 왔지만, 알레그리 감독은 특히나 트리보테로 중원을 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의 완성본을 바로 14-15시즌 유벤투스에서 볼 수 있었다.

(좌)14-15시즌 유벤투스의 4-3-1-2 전술 (우)15-16시즌 유벤투스의 3-5-2 전술 ⓒ 김광희


피를로, 비달, 마르키시오, 그리고 포그바가 꾸렸던 유벤투스의 중원은 완벽하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피를로는 수비 라인 바로 앞에 위치하여 상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때문에 후방에서 경기장 전체를 바라보며 적재적소에 공을 뿌려주는, 피를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중앙미드필더이지만 훌륭한 공격력을 보유한 포그바에게 알레그리 감독은 굳이 수비적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벤투스에는 포그바가 만들어내는 수비적 공백을 충실히 메워주는 비달과 마르키시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달은 매 경기 경이로운 활동량을 보이며 공수 양면에 걸쳐서 지배력을 보여줬으며, 마르키시오는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의 끝을 보여줬다.

하지만 피를로, 비달, 포그바가 차례로 팀을 떠나면서 막강함을 자랑하던 유벤투스의 중원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마르키시오가 건재하고, 케디라와 퍄니치를 영입했지만 확실히 피를로, 비달, 포그바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위기를 기회로, 알레그리의 새로운 카드

최근 알레그리 감독이 선보인 4-2-3-1 전술 ⓒ 김광희


놀랍게도 알레그리 감독은 4-2-3-1 전술을 새로이 꺼내들었다. 콘테 감독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벤투스는 줄곧 3-5-2, 혹은 4-3-1-2 전술을 사용해왔기에 알레그리 감독의 새로운 카드는 상당히 신선해 보였다.

먼저 그는 그동안 고집해온 트리보테를 과감히 버리고 투 볼란치를 선택했다. 트리보테에 영 적응을 못하던 케디라와 퍄니치가 투 볼란치 체제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훌륭한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는 퍄니치와 수비적인 부분에서 강점을 보이는 케디라의 조합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과인, 디발라, 만주키치, 콰드라도가 동시에 선발 라인업에 올라간다는 것이다. 콰드라도는 측면에서 뛰는 선수라지만, 이과인, 디발라, 만주키치는 모두 최전방에 어울리는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알레그리 감독은 3명의 스트라이커를 동시에 출격시켜 큰 재미를 보고 있다. 현재 세리에A 최고의 공격수인 이과인이 최전방에 서는 것은 변함이 없다. 디발라는 이과인 보다 쳐진 곳에 위치하여 이과인을 보좌한다. 유벤투스의 차기 10번 후보답게 그는 환타지스타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드리블, 패스, 개인기, 창의성 등 확실히 최전방에 고립시켜두기에는 아까운 재능이다.

만주키치의 윙어 변신은 알레그리 감독의 '신의 한수'였다. 바이에른 뮌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국가대표팀에서도 항상 최전방에서 뛰던 만주키치가 윙어로서 성공할 줄은 아마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개인기나 드리블은 확실히 다른 윙어들과 비교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주키치의 활동량과 연계 능력은 그 어떤 윙어도 따라가기 힘들다. 게다가 최전방에서 상대 센터백들과 몸싸움을 하던 그에게 측면에서의 몸싸움은 매우 수월했다. 윙어로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윙어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활용하여 그는 알레그리의 4-2-3-1 체제에서 핵심 멤버가 되었다.

아직 4-2-3-1이 유벤투스의 메인 전술이라고 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유벤투스는 지난 수 년 동안 3-5-2와 4-3-1-2로 성공을 거두어 왔다. 이미 증명된 전술이라는 얘기이다. 4-2-3-1은 상대적으로 빈약해진 중원으로 인해 알레그리 감독이 임시방편 대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벤투스가 더욱 무서워진 이유는 4-2-3-1 전술 그 자체가 아니라, 4-2-3-1 전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감독이 확실한 전술적 철학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명장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곧 팀의 뿌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튼튼한 뿌리를 가진 팀은 결국 강팀으로 거듭나게 되고 우승에 가까워지게 된다. 다만, 강한 팀은 끊임없이 다른 팀들의 목표가 되고 공략을 당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철학만을 관철한다면 뿌리는 썩을 것이고 결국 팀은 무너질 것이다.

리그 자체에 워낙 대적할 만한 경쟁자가 없었던 유벤투스이기에 조금 삐걱거려도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과 같은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지 못하자 알레그리 감독은 곧바로 기존의 철학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카드를 선보였다. 새로운 유벤투스는 성공적이었고, 앞으로도 유벤투스의 독주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이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알레그리 감독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고, 유벤투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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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김광희 기자
유벤투스 알레그리 세리에A 만주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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