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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감독' 라니에리는 왜 경질당했나

구단 사상 첫 1부 리그 우승 이끌었지만, 올시즌 극도의 부진

17.02.25 14:17최종업데이트17.02.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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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에리 감독 ⓒ 연합뉴스/EPA


레스터시티를 지난해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끝내 경질당했다. 레스터 시티는 24일(이하 한국시각)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라니에리 감독과 결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3일 세비야(스페인)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1-2로 패한 지 하루만의 일이다.

라니에리 감독은 지난 시즌 레스터를 구단 역사상 최초로 1부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전임 나이젤 피어슨의 후임으로 레스터 지휘봉을 잡은 지 불과 10개월만의 일이었다. 잉글랜드의 중소 클럽에 불과한 레스터가 유럽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고 평가받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유와 맨시티, 아스널, 첼시, 토트넘 등 쟁쟁한 빅클럽들을 모두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마치 한편의 '동화같은 기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라니에리 감독 개인으로서도 지도자 경력 30여년 만에 이뤄낸 첫 1부리그 우승이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라니에리 감독은, 유로 2016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페르난두 산투스감독과 챔피언스리그 라 운데시마(11번째 우승)를 달성한 지네딘 지단 감독(레알 마드리드)을 제치고 2016년 FIFA 올해의 감독에도 선임되는 등 지도자 커리어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하지만 라니에리 감독과 레스터 시티가 이루어낸 기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데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레스터시티는 올시즌 리그에서 5승 6무 14패라는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17위에 그치고 있다. 강등권인 18~20위와는 승점 1~2점차에 불과하여 당장 다음 라운드에라도 최하위까지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역대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 우승팀이 이듬해 강등당한 것은 1937-38시즌 맨체스터시티가 유일하다.

지난해 우승주역 3인방 중 첼시로 이적한 은골로 캉테의 공백이 예상보다 컸다. 엄청난 활동량과 경기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커버하던 캉테가 떠난 것만으로 레스터는 지난 시즌의 견고한 수비 조직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팀에 잔류한 제이미 바디와 리야드 마레즈는 동반 부진에 빠지며 지난 시즌 기록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성적으로 오히려 작년의 활약이 '플루크(Fluke)'가 아니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전력보강을 위하여 영입한 대체자들의 기량도 대부분 기대에 못미쳤다.

지난 시즌 소수 정예 규모의 선수단만으로 EPL을 제패했던 레스터지만 올해는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빡빡한 일정속에 체력부담이 높아졌고, 절치부심한 EPL 빅클럽들의 전력이 나란히 상향 평준화되며 상대적으로 전력이 정체된 레스터는 순식간에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지난 시즌 레스터의 주 전술이었던 4-4-2나 선수비 후역습 패턴에 대하여 상대팀의 분석과 적응이 충분히 끝난 것도 위력이 반감된 이유다. 계속되는 부진에 위기감을 느낀 라니에리 감독이 올시즌 전술을 수시로 바꾸거나 일부 주축 선수들과 갈등을 빚은 것도 팀분위기를 오히려 더 악화시켰다.

현재 레스터는 컵 대회인 FA컵과 리그컵에서도 일찌감치 탈락한 상황이다. 그나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6강에 올라 자존심을 세웠으나 1차전서 세비야에 패해 8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게되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구단은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라니에리 감독과 결별하는 길을 택했다.

이로서 EPL은 지난해에 이어 2년연속 우승 감독이 경질당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배출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2014/15시즌 첼시를 정상으로 이끌었으나 이듬해인 15/16시즌에 극심한 부진을 보이며 경질됐고 올시즌 현재 맨유의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그만큼 변수가 많고 판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EPL의 특성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라니에리 감독의 경질이 성급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라니에리 감독은 어쨌든 레스터에 두 번 다시 얻기 힘든 우승이라는 성과물을 안긴 감독이다. 올시즌 EPL 강등경쟁은 15~20위 간 승점 차가 5점밖에 되지않을 만큼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아직 반등의 여지도 충분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골차 열세는 아직 홈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만회할 수 있을만한 격차였다. 영국 현지에서도 많은 축구인들이 SNS와 인터뷰를 통하여 레스터시티의 결정에 비판을 보내며 라니에리 감독을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레스터시티의 결단이 불가피했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올시즌 라니에리 감독의 레스터가 지난 시즌만큼의 성과를 재현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구단도 예측했던 대목이다. 레스터는 올시즌 내부적인 목표를 1부리그 생존과 승점 40점 이상으로 정했다. 하지만 시즌의 약 2/3를 소화한 시점에서 라니에리 감독은 최소한의 목표마저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어느 정도의 성적 하락이나 컵대회 탈락은 그렇다쳐도 2부 강등은 구단으로서도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은 라니에리 감독이 달라진 주변 환경에 맞춘 새로운 변화나 대안의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레스터는 1월 1일 웨스트햄전 승리 이후 각종 대회에서 8경기 연속 무승에 시달리고 있으며 FA컵에서는 3부리그 밀월에게 패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UCL 16강 1차전에서 세비야전에서 만회골을 넣기 전까지는 6경기 연속 무득점의 빈공을 보이기도 했다. 어디를 봐도 반등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레스터 구단이 계속 라니에리 감독에 계속 인내심을 가지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여기까지가 라니에리 감독의 한계였다고도 볼수 있다. 라니에리는 나폴리, 피오렌티나, 유벤투스(이상 이탈리아), 첼시(잉글랜드), 아틀레티코, 발렌시아(스페인) 등 유럽 빅리그의 여러 명문팀을 거친 백전노장이지만 사실 레스터 이전까지는 오히려 '우승과는 절대 인연이 없는 감독'으로 더 유명했다. 분명 팀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은 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팀은 정체되고 경질 당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는 것으로 라니에리 감독의 지도자 경력을 요약할 수 있다. 감독 생활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한 팀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라니에리와 레스터의 동행은 불과 2년도 되지않은 짧은 시간동안 천당과 지옥을 모두 맛보고 다소 씁쓸한 엔딩을 맞이했다. 라니에리를 내친 것이 레스터에 또다른 신의 한수가 될지, 아니면 무모한 자충수가 될지는 올시즌 막판 1부리그 생존 여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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