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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거듭하는 스릴러 수작, 끝날 땐 만족감만

[한뼘리뷰]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영리한 영화, <터널>

17.01.10 11:46최종업데이트17.01.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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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 포스터. 동명의 국내 영화와는 관계가 없는 작품이다. ⓒ (주)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어느 날, 지하에 있는 작업실에서 일하던 컴퓨터 엔지니어 호아킨(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분)은 벽 너머에 위치한, 옆집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갈레레토(파블로 에카리 분) 일당의 소리를 듣는다. 호기심에 몰래 엿듣던 그는 미심쩍은 낌새를 맡고 소리가 나는 곳에 구멍을 내고 카메라를 설치해서 감시를 시작한다. 녹화된 영상을 보던 호아킨은 갈레레토 일당이 은행을 털기 위해 터널을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터널>은 <로사리오의 갱>(Gangs from Rosario, 2001)과 <원칙의 문제>(A Matter of Principle, 2009)에서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아르헨티나 영화감독 로드리고 그란데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이번에도 각본은 직접 작업했다. 주연을 맡은 이는 스페인의 최고 스타인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인택토><카르멘><킹 오브 더 힐><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한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를 국내의 많은 분은 <고래와 창녀>의 주인공 에밀리오로 기억할 것이다. <터널>에서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는 갈레레토 일당에게 회심의 역습을 가하는 흥미로운 인물로 분한다.

<터널> 속 '터널'은 매우 다양한 함의를 지닌다. ⓒ (주)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터널>에서 '터널'은 여러 가지 의미로 드러난다. 첫 번째 의미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시점으로 집을 구석구석 포착한다.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을 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이윽고 쓸쓸함이 가득한 현재의 모습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과거의 장면을 교차시킨다. 창백하고 어두운 화면의 중심에 위치한 이는 휠체어에 탄 호아킨. 그가 어떤 사고를 겪었는지 영화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내와 딸을 잃은 그에게 남겨진 것은 행복했던 시절의 가족사진과 부서진 자동차, 유일한 친구가 개 키시마로인걸 보여줄 뿐이다. 그의 작업 공간인 지하실은 마음의 문을 닫은 호아킨을 상징한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호아킨은 아내와 딸의 추억이 깃든 집을 잃을 처지에 놓인다. 돈이 필요한 호아킨이 2층을 월세로 놓으면서 댄서로 돈을 버는 베르타(클라라 라고 분)와 그녀의 딸 베티(우마 살두엔데 분)가 함께 살게 된다. 제멋대로 음악을 크게 틀고,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베르타는 호아킨의 일상을 슬그머니 바꾸어놓는다. 어떤 일로 인해 타인과 대화를 거부하는 베티의 아픔 역시 눈에 밟힌다. 베르타외 베티를 통해 갇혀있던 호아킨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그렇게 교감의 터널이란 두 번째 의미가 생긴다.

갈레레토 일당이 은행을 털기 위해 파는 터널은 세 번째 의미로 기능한다. 범죄를 위해 뚫은 터널은 호아킨과 갈레레토 일당이 엮이는 계기를 제공한다. 또한, 베르타와 베티가 사건에 연루되는 고리로 작용한다. 갈레레토 일당이 판 터널이 은행에 가까워질수록 숨겨졌던 진실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오고, 관객은 숨죽이며 지켜보게 된다.

디지털 개봉한 영화 <터널>. 다운로드 받아서 한 번쯤 볼 만한 가치가 있다. ⓒ (주)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갈레레토 일당에게 역습을 가하기 위한 호아킨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영화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호아킨의 계획으로 갈레레토 일당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팠던 터널은 호아킨에겐 점차 마음의 문을 여는 터널로, 베르타와 베티에겐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란 터널로 변화한다. 터널의 마지막 의미는 바로 미래인 셈이다.

<터널>의 아르헨티나 원제 <Al final del tunel>는 영어 원제(At the End of the Tunnel) 그대로 '터널의 끝에서'이란 의미를 가진다. 원제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의 끝과 은행을 털기 위해 판 터널의 끝을 지시한다. 갇힌 상태를 뚫은 교감이 끝자락에서 본 미래도 담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영리한 영화 <터널>은 다양한 터널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리고 영화의 '터널'을 모두 통과한 후, 그 끝엔 위치한 '만족'이 당신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터널 로드리고 그란데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파블로 에카리 클라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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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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