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런닝맨> 떠나는 배우 송지효에 보내는 헌사

[TV리뷰] <런닝맨>의 송지효가 7년 동안 이룬 것들, 지킨 것들

16.12.16 10:10최종업데이트16.12.16 10:22
원고료로 응원

SBS <런닝맨> 속 송지효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진을 소비하는 방식과 사뭇 다른 캐릭터를 구축했다. ⓒ SBS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을 유치해서 안 보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의 꾸준한 시청자다. 시청자의 웃음을 추구하는 예능은, 때로 불편하게 다가오곤 한다.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올바름에 대한 것들'을 손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런닝맨> 역시 이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프로그램을 지지해온 이유는 '관계적 평등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서열'이라는 코드로 불편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여타 개그·예능 프로그램들과 달리, <런닝맨>은 멤버구성 그 자체로 편안함을 주곤 했다. 최연장자인 지석진은, 힘에서는 최약체로 분류되면서 초식동물 '임팔라'라고 불렸다. 나이가 줄 수 있는 위계를, 술래잡기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없애버린 것이다. 막내인 광수는, 가장 어리지만 힘의 '최강자' 김종국에게 시도 때도 없이 깐족대면서 '막내가 해야 하는 순종적 역할'에서 탈피했다. (이는 <무한도전>의 광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자연스레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유재석은 <런닝맨>에서만큼은 원톱이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에서 얄미운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주변적 웃음을 담당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멤버들은 직업, 성별, 나이, 경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의 캐릭터를 쌓아 올렸으며, 이것은 <런닝맨>이 가진 가장 큰 힘이었다.

<런닝맨> 속 송지효의 특별함

'불량 지효'라는 캐릭터는 송지효만 소화할 수 있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저 '센 언니'나 '걸크러시' 유발에 그치지 않고, 다른 출연진들과 평등한 관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 SBS


이 관계 속에서, 송지효의 위치는 조금 특별했다. 유일한 여성멤버지만 막내는 아니었다. 버라이어티 예능인으로서 경력이 거의 전무하지만, '꽃'으로 취급되는 '여성배우'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 애매함 속에서 그 스스로를 '예능 캐릭터화' 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예능 속 여성들이 소비되는 것처럼 주변부의 역할을 담당했다. "월요커플"로 대표되는 개리와의 로맨스 담당 등의 역할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 커플 구도를 주체적으로 캐릭터화함과 동시에 프로그램 전면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운빨'로 각종 게임에서 우승을 독차지하는 건 물론이고, 체력과 힘 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여자라 봐준다'는 식의 배려를 스스로 적극 거부했고, 그것을 프로그램에 대한 헌신으로 증명했다. <런닝맨>을 하는 7년 동안 MBC <계백>, KBS <천명>, tvN <응급남녀> <구여친클럽>,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등의 많은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도, 성실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연예인으로 보이는 성실함 뿐만이 아니다. 이 '사람'이 보여주는 사람됨은 더욱 놀라웠다. 몸을 쓰는 프로그램을 힘들어하는 여성 게스트들을 가장 먼저 챙기고 배려하면서 좋은언니·선배의 역할을 해냈다. 예쁜 여성 게스트가 등장하면, 고정멤버인 지효의 외모나 성격을 놀리는 남자멤버들의 장난에도 허허 웃어넘기거나 때로는 '불량지효강림' 등의 콘셉트로 그들을 응징(?)하며 재미를 이끌어내곤 했다. 남자멤버들과 이루는 이토록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도, 송지효는 "혹시 나 혼자 여자라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2013 SBS 연예대상)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멤버들을 끊임없이 배려하는 그였다.

관계적 평등, 그 편안한 웃음의 주축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가 성실하게 걸어온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래서 이런 이별이 더욱 창피하고 아쉬운지 모른다. ⓒ SBS


그렇게 그는 스스로 살길을 찾아가며 척박한 버라이어티 예능의 땅에서 7년을 보냈고, 성공했다. 방송 3사의 대표 예능, <무한도전>과 <1박 2일> <런닝맨>을 통틀어 고정으로 출연하는 유일한 여성 연예인이었고, 유일하게 '한 자리 차지하는' 예능인이 아닌 여성 배우로서 죄송함을 느낀다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다.

송지효가 <런닝맨>을 떠난다. 개리와 김종국도 함께 하차하면서, 평등함의 미덕이 빛나는 <런닝맨>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앞으로 관계적 평등의 요소가 사라질듯한, <런닝맨>에 적응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7년의 시간 동안 평등한 예능을 만들어온 런닝맨 멤버들에 감사를 표하며 '지효배우님'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남지우 시민기자의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런닝맨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빈티지 옷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사람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