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의 '재혁' 김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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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 종료 후 2년을 기다린 <소수의견>(용산참사 소재)이 그랬듯 <판도라>도 공개까지 꽤 기다려야 했다. 상업영화를 찍은 배우로서 이례적인 기다림이다. "맞다. 처음엔 <살인자의 기억법> 등 차기작을 찍고 있어서 괜찮았는데 이렇게 개봉이 늦을 줄 몰랐다. 개봉 시기 고민이야 내 몫은 아니지만 조바심이 많이 났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기다리자는 마음이었는데 우리가 지진을 겪지 않았나. 5.8 강도였나. 나도 서울에서 느낄 정도였다. 경주 분들은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더라. 개봉 전까지 나도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우린 안전불감증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이 영화를 볼까'라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작품에 참여했는데 현실처럼 다가오니 무섭더라."
- 내심 영화적 소재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 큰 고민은 없었다. 스토리 자체도 너무 좋았고, 배우 입장에서 재혁은 욕심 나는 인물이었다. <판도라>가 콘트롤타워의 부재를 다루고 있는데 사실 이건 우리나라 사고에서 늘 있던 일 중 하나이지 않나. 중요한 건 원전사고는 그 모든 대비가 완벽해도 막을까 말까 하다는 사실이다. 관심도 없던 원전 문제를 영화 찍으며 알게 된 셈이다. 사회적 메시지가 담길 수도 있는 작품인데 여러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촬영 자체는 배우 입장에선 어떤 외압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감독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찍고 나니 여러가지 힘들었던 일을 알려주시더라! 그래도 결과물 자체는 여러 생각 거리를 던지는 영화로 나와서 좋다. 촬영할 땐 이런 게 정서적으로 잘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다."
- 말한 대로 정서적 공감이 중요한 작품이다. 다른 재난영화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웠을 것 같다. 또 재난영화 특성상 신파를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뻔하게 보이는 신파가 있지만 그걸 해소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라는, 그간 없었던 내용을 다룬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작품을 준비하며 살을 좀 찌웠다. 그간 내게 도시적, 차가운 이미지가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조위가 내 모델이라 생각하고 부러 슬픈 눈을 하고 그렇게 날 가꿔보기도 했다(웃음).
재혁은 '츤데레'(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애정으로 가득한)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벼움도 있는 인물로 해석했다.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인류애가 있는 인물로 만들어갔다. 소시민의 영웅이기도 하잖나. 사실 재혁은 영웅이 되고자 한 사람도 아니다. 일종의 등 떠밀린 사람 중 하나지. 마지막 장면에서 내 대사가 좀 많다고 느꼈는데 그래도 짠하더라. 분명 신파지만 이게 한국형 재난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잘못은 즈그들이 해놓고, 수습은 국민들 보고 하란다!' 이 대사가 기억난다. 연기할 땐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한탄이라 느꼈는데 그보다는 더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대사더라.
이 재난이 다른 재난영화와 다른 건 이기적 개인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게 아니잖나.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난 해결 과정 자체가 중요했지. <부산행>은 좀비로부터 날 격리하면 살 수 있지만 방사능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걸 고민하면서 만들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